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16일(현지 시각)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이란과)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패트릭 섀너핸 국방장관 대행도 17일 "이란과 충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말과는 달리 미국은 이란 주변으로 계속 병력과 전함, 무기들을 증강 배치하고 있다. 이란 핵개발 갈등과 호르무즈 해협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진행되는 이런 움직임이 미국과 이란의 군사 충돌을 현실화하는 쪽으로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섀너핸 미 국방장관 대행은 17일 성명을 내고 "중동에서의 공중, 해상, 지상의 위협에 대처하는 방어 목적으로 약 1000명의 추가 병력 파견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24일 1500명을 중동에 추가 배치하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1000명을 더 보내겠다고 한 것이다.

이번 추가 파병 발표는 이날 이란 정부가 2015년 서방 주요 6국과 맺은 핵 합의(JCPOA)를 일부 지키지 않겠다고 위협한 직후 나왔다. 이란 원자력청은 오는 27일부터 핵 합의에서 정했던 우라늄 저장 한도(300㎏)를 넘기겠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이대로 가면 이란이 1년 안에 핵폭탄 한 개를 만드는 데 필요한 핵 물질을 충분히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평소에도 중동에 3만명 이상의 병력을 배치하고 있다. 카타르의 알우데이드 공군기지에 F-35A 등 전투기 100여대와 1만명의 병력이 상시 대기하고 있다. 바레인에는 미 해군 제5함대 기지가 있다. 5함대는 최대 1만5000명의 병력이 항공모함 전단 등을 앞세워 작전에 참가한다. 별도로 지상군으로 이라크에 5000명, 시리아에 2000명이 주둔한다. 시리아에 배치된 병력은 주로 테러 세력인 IS(이슬람 국가) 퇴치용이지만, 이라크에 배치된 병력은 언제든 이란 공격에 가담할 수 있다.

이처럼 평소에도 이란을 견제할 수 있는 병력을 두고 있는 미국은 지난달부터 최신 무기와 병력을 집중적으로 추가 배치하며 이란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지난달 초엔 지중해에 있던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와 휘하 전단을 이란 코앞인 페르시아만에 배치했다. 에이브러햄 링컨호는 전투기 130여대와 휘하 전함 10척과 함께 다닌다. 이 전단의 전체 병력은 9000명에 달한다. 또 공격용 헬기와 상륙용 장갑차를 갖고 다니는 2만t급 대형 상륙함인 알링턴함(병력 700명)도 대서양에서 페르시아만에 추가로 보냈다.

미국은 공중에서 핵 공격이 가능하다는 것도 시사했다. 핵미사일 공격이 가능한 전략 폭격기 B-52 4대를 카타르 알우데이드 공군기지로 보낸 것이다. 미 국방부는 보란 듯이 B-52 4대가 알우데이드 공군기지에 도착하는 장면을 담은 사진을 공개했다. 자세한 장소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이란의 미사일 공격에 대비해 지대공 요격 미사일인 패트리엇 포대도 추가 배치했다.

미국의 전력 추가 배치로 평소 약 3만2000명의 미군이 있는 중동 지역에는 약 4만4000명으로 병력이 늘었다. 물론 당장 이 병력만으로 이란과 전쟁을 하는 것은 무리다. 2003년 미국은 이라크 전쟁 때 병력 13만명 이상을 동원했다. 이라크보다 인구수나 군사력에서 훨씬 강한 이란과 전쟁을 벌이기 위해선 그보다 더 많은 병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란의 전력은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는 이란군 전체 병력을 52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BBC에 따르면, 이란 정예부대인 혁명수비대만 해도 지상군·해군·공군을 망라해 약 15만명의 병력을 보유 중이다. 탄도미사일을 비롯한 전략 무기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17일 모하마드 바게리 이란 참모총장은 군 장성들과 회동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기로 결정하면 과감히 공개적으로 예고하고 적들을 강하게 타격할 것이고 그럴 만한 군사력이 충분하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미국이 이란 공격을 위해 유사시 최대 12만명의 병력을 보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만약 더 보낸다면 훨씬 더 많이 보내겠다"고 했다. 전쟁이라는 선택지를 검토하고는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