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북중 수교 70주년, 金 4차례 방중…시진핑 방북 필요성 있어
"미중 무역갈등으로 시진핑 방북 미뤄와…북한을 카드로 공세로 전환"
"中, 화웨이 사태로 韓 압박 필요…北과 오랜 관계 고려해 먼저 평양 가는 것"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오는 20~21일 북한을 전격 방문키로 한 데 대해 전문가들은 무역· 외교·군사 등 전방위적으로 대중 공세를 강화하는 미국에 맞서 중국이 북한을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의도로 분석했다. 반(反)화웨이 캠페인,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 작전, 주한미군 사드 정식 배치 압박 등 미국의 전방위 파상 공세로 수세에 몰린 중국이 한반도 카드로 대미(對美) 맞대응에 나섰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또 시 주석이 북한 방문 뒤 일정 시점에 방한할 가능성도 높다고 봤다. 북한을 방문해 대미 공조 전선을 다진 뒤 한국을 찾아 미국의 공세에 맞선 전열 정비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다.

전문가들은 시 주석이 북한을 찾을 필요성은 충분히 있었다고 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올해가 북중 수교 70주년이어서 북·중 정상이 만날 필요성은 있었다"고 했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 원장은 "김정은이 중국에 총 4번 방문한 만큼 시진핑으로서도 답방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고 했다.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은 "시 주석이 방한할 필요가 있는데, 전통적인 외교관계 상 시 주석이 서울보다 평양에 먼저 방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월 4차 방중한 김정은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시진핑 주석과 악수하는 모습.

그러나 외교가에선 시 주석이 이달 중 서울을 먼저 찾을 것이란 관측도 있었다. 그럼에도 시 주석이 북한을 먼저 찾는 것은 다분히 대미 공세적 성격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신 센터장은 "지금까지 중국이 미·중 무역갈등으로 수세에 있었기 때문에 미국의 입장을 고려해 시 주석이 북한을 방문하지 않고 있었다"며 "하지만 최근 미국이 대만과 홍콩 문제를 건드리고 있어, 중국이 북한 방문 카드로 대미 공세에 나선 것"이라고 했다. 윤 전 원장은 "시 주석이 (일본 오사카에서 오는 28~29일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미국과 담판을 앞두고 북한이라는 '전략적 자산'을 품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고 했다. 전 전 원장은 "북한과 중국, 러시아는 삼각공조체제를 구축하고 있다"며 "최근 김정은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만났고,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이 만났다. 이제 시 주석과 김정은이 만나 전열을 정비한 다음, 시 주석이 G20에서 북한에 대해 (미국에) 이야기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 주석의 이번 방북이 미국의 대중 공세에 맞대응 성격이 강하다면 미·북 비핵화 협상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 많았다. 신 센터장은 "시 주석의 방북으로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 주장이 더 완고해질 수 있다"며 "미국과 한국은 비핵화 협상에 중국이 부정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도록 공조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전 전 원장은 "중국은 '북한을 핵 포기 시키려면 미국이 북한을 위협하면 안 된다'며 아시아에서 미국의 위협 요인을 철수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라고 했다. 다만 윤 전 원장은 "중국은 표면적으로는 북한 편을 들겠지만, 동시에 북한에게 비핵화에 진정성을 보이라는 입장을 개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북 비핵화 협상이 교착 국면을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시 주석이 북한을 찾은 것은 아시아·태평양 전략을 둘러싼 미·중 간 힘겨루기 성격이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전 전 원장은 "미·중 대결은 경제적 분야는 물론, 안보 분야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그것"이라며 "미국은 북한의 핵포기를 1차적인 목표로 삼고 북한과 협상하려고 하고, 중국은 북한의 핵을 용인하면서라도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게 목표"라고 했다.

김정은 입장에선 시 주석 방북이 '큰 선물'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신 센터장은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났고, 블라디보스토크 북·러 정상회담도 별 성과가 없어 김정은이 외교적인 고립에 처해있다"며 "그런 김정은으로선 시 주석 방북으로 외교적 고립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말했다. 윤 전 원장은 "김정은으로서는 미국과의 담판을 앞두고, 중국과의 관계를 굳혀놓는 게 좋을 것"이라고 했다.

시 주석 역시 갈수록 어려워지는 미·중 무역갈등 속에서 한국을 압박하기 위해 서울로 가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전통적 우방인 북한을, 그것도 김정은이 중국을 4번이나 찾은 상황에서 평양보다 서울을 먼저 찾기는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방북은 방한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 성격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윤 전 원장은 "시 주석이 평양보다 먼저 서울로 가면 북한은 충격이 크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며 "시 주석은 방한해 화웨이 사태에 대해 한국이 미국 편을 들지 못하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미국 동맹국 중 한국이 가장 약한 고리"라며 "화웨이에 대해 세계 유수 기업이 다 돌아선 상황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까지 차단되면 (화웨이는) 끝장나니, 시 주석이 한국에 와 반도체를 확보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