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전 남편 살해사건’ 피의자 고유정씨(36)의 범행 동기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그를 ‘경계선 성격장애’로 특정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상민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14일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그가 어떤 성격장애가 있는지는 정확한 분석과 검사를 거쳐야 알 수 있지만, 경계선 성격장애로만 특정짓기는 어렵고 ‘반사회적 성격장애’ 특징도 공존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경계선 성격장애와 반사회적 성격장애는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경계선 성격장애는 평소에는 정상적으로 생활하다가 특정 요인이 불안을 야기하게 되면 극단적인 정서 변화, 충동성을 나타내는 장애다. 불안정한 대인관계, 인지 왜곡, 우울, 반복적 자기파괴, 피해망상 등의 행동을 보인다. 경계선은 정신병과 신경증의 경계를 의미한다. 현실 검증 능력이 있는 ‘신경증’ 같지만, 때때로 현실 검증 능력이 무너진 ‘정신병’처럼 보일 수 있다.

‘제주 전 남편 살해 사건’ 피의자 고유정이 12일 오전 제주 동부경찰서에서 제주지검으로 송치되고 있다.

반사회적 성격장애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무시하고, 사회와 질서 및 규범을 위반하는 증상을 나타낸다. 기물을 파손하거나 다른 사람을 학대하고 심각한 규칙 위반 혹은 과잉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타인의 감정, 권리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무시하며 자신의 이득과 이해에 따라 행동한다. 때로는 상대방을 속이고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성향이 있다.

이상민 교수는 "고씨는 경계선 성격장애와 반사회적 성격장애 중 한쪽에 편중된 성격적 특성을 갖고 있지 않다"면서 "경계선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은 공허감과 무기력감, 불안 등 요소가 복합되며 자살 시도 등 자신을 학대하는 등 특징이 있는 반면, 반사회적 성격장애는 도덕적 관념이 부족하고 공감능력이 부족하며, 범법행위를 일삼는 등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특징이 있다. 고씨는 두 요소 모두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반사회적 성격장애 등에서 보이는 냉혈한적인 특징과 무기력감, 우울증 등이 공존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정서불안, 우울, 무기력감, 상대방에 대한 집착, 허언, 정동장애(여러 현실 상황에서 부적절한 정서 반응을 보이는 장애) 등과 반사회적 성격장애의 특징도 함께 있다"면서 "무엇보다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고도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마트에 가서 태연하게 물건을 환불하는 등 윤리 규범에 어긋난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는 경계선 성격장애와는 다른 특징"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교수는 "단순히 한 가지 정신질환으로 특정해 단정 짓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국립법무병원 치료감호소에서 정밀 진단을 통해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사회적 성격장애, 경계선 성격장애, 분열성 성격장애, 편집성 성격장애 등의 성격장애는 대인관계가 많이 이뤄지는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중요성이 부각되는 정신질환이다. 2010년 세계보건기구(WHO)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성격장애 유병률은 7% 이상이다.

성격 또는 인격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사회에 잘 부합되지 않는 뿌리 깊은 사고와 행동 양식을 갖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성격이 이상하다는 것은 모르지만 일상생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안다.

성격장애는 보통 사춘기나 성인기 초기에 시작되지만 나중에야 진단을 받는다. 대부분은 원인이 알려지지 않았다. 평소 일상생활을 할 때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가도 불안을 촉발하는 요인이나 스트레스 상황이 발생하면 성격이 갑자기 괴팍해지는 경우부터 잔인한 범죄를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등 광범위하다.

한편 WHO는 오는 2022년 국제질병분류(ICD) 제11판에서 성격장애 진단기준을 바꿀 예정이다. 전 세계 회원국에서 시행되며 1990년 제10판 개정 승인 이래 30여 년 만이다. 개정안에선 인간의 성격을 부정적 정서, 강박, 고립, 반사회성, 탈억제 5가지로 분류했다. 진단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경미한 성격 문제는 ‘성격곤란’이라는 하위증후군으로 판단한다.

이 교수는 "새 분류 체계에서는 두 가지 이상의 성격장애 특징을 보이는 환자의 경우엔 통합·포괄적으로 진단을 내릴 수 있다"며 "인간의 성격장애를 한 가지로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을 학계에서도 고민한 결과"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