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조선]

그레이엄 앨리슨(Graham Allison) 옥스퍼드대 경제학 석사, 하버드대 정치학 박사, 벨퍼 국제문제연구소 소장, 미 국무부·국방성·CIA 자문위원

"한국전쟁으로 13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부분이 중공(오늘날의 중국)군 또는 미군에 의한 것이었다. 한반도에서 또다시 전쟁이 발발한다면 훨씬 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석좌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내 ‘미·중 갈등이 무력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지’ 물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미·중 무력 충돌은 한국전쟁 이상으로 한국에 큰 상처를 남길 수 있다고 걱정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그의 저서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을 통해 개념화된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이 주장의 근거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발발 원인을 분석한 데서 따온 개념이다. 패권 세력과 새로 부상하는 세력 간 극심한 구조적 갈등을 뜻한다.

앨리슨 교수는 책의 집필을 위해 지난 500년간 신흥국가의 부상이 기존 패권 국가와 강하게 충돌한 사례 16개를 선정했다. 이 중에서 제1·2차 세계대전, 중·일 전쟁을 포함해 12번은 전쟁으로 끝이 났다. 미·소 냉전을 포함, 단 4차례만 전쟁을 모면했다. 앨리슨 교수는 미·중 관계를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적용되는 17번째 사례로 본다. ‘예정된 전쟁’에서 아테네는 중국으로, 스파르타는 미국으로 변주(變奏)된다.

앨리슨 교수는 미국을 대표하는 안보·국방 분야의 석학이다. 특히 핵확산과 테러리즘 그리고 정책 입안의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1977~89년까지 하버드 케네디스쿨 학장을 맡아 수많은 석학과 정계 인물을 배출하는 세계 최고의 정치행정대학원으로 키웠다. 레이건과 클린턴 행정부에서 각각 국방장관 특보와 국방성 차관보를 역임했다.

‘미·중 갈등이 국제 정세에 미칠 영향’에 관한 기자의 이메일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을 수 없는 인터뷰"라며 며칠 뒤 상세한 답변을 보내왔다.

1963년 ‘평화연설’ 당시 케네디 전 대통령의 모습.

미·중 전쟁을 촉발할 수 있는 위험요인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투키디데스 함정의 중요한 동력은 ‘계산 착오’다. 패권국이나 급부상하는 도전자 양쪽 모두 자신의 능력은 과대평가하고 상대방의 힘은 과소평가하기에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양쪽의 의사와 관계없이 사소한 충돌이 전쟁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 북한의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양안 관계(중국 대만 관계)’ 악화, 남중국해에서 우발적인 무력 도발 등 ‘미·중 무력 충돌’이라는 점화 플러그에 불꽃을 댕길 수 있는 요인들은 많이 있다."

두 나라가 무력으로 맞붙는다면 한국에 피해가 클 수밖에 없지 않나.

"아프리카 속담에 ‘코끼리들이 싸우면 주변에 자란 풀들은 짓밟힐 수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 한국인이 새겨들어야 할 경구다.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총사령관이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불과 1년 전 혁명으로 공산정권을 수립한 마오쩌둥(毛澤東)이 미국을 향해 총부리를 겨눌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전쟁에서 130만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대부분의 사상자가 미군과 중공군에 의해 발생했다. ‘제2의 한국전쟁’이 일어난다면 훨씬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미·중 무력 충돌 시 한반도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미·북 간, 남북 간 대화 창구를 계속 가동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미국과 중국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은 없을까.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연설 내용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극복을 통해 얻은 교훈을 이듬해 아메리칸대 졸업식 축사(일명 평화연설)에서 ‘당장 차이를 극복할 수 없다면 적어도 다양성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하자’고 말했다. 케네디의 발언은 중국 헌법에 명기된 저우언라이(周恩來·주은래) 전 총리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5대 원칙(영토·주권의 상호존중, 불침략, 내정불간섭, 평등·호혜, 평화적 공존)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주 전 총리의 5대 원칙에 대해 ‘중국 외교 정책의 근간’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케네디와 주 전 총리의 원칙을 조화시켜 ‘새로운 형태의 열강 관계’를 정립할 수는 없을까 고민 중이다."

미국이 중국, 이란, 베네수엘라 등 너무 많은 나라와 대립하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동의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껏 내가 국제 사회에서 경험한 가장 특이한 스타일의 리더다. 기회만 생기면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시비를 거는데, 현명한 접근법은 아니라고 본다. 중국이 견제해야 할 ‘주적(主敵)’이라고 믿는다면 한국, 일본과 동맹을 강화하고 인도와도 협력관계를 굳건히 해야 한다. 중국 외에 다른 곳에서 쓸데없이 시비에 휘말리는 건 피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 전면적인 무역전쟁에 나선 것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주도의 미·소 군비경쟁과 비슷한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레이건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나도 레이건 대통령을 존경한다. 영광스럽게도 레이건 행정부 때 캐스퍼 와인버거 국방장관 특별보좌관을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소련과 지금의 중국 간에는 비슷한 점보다는 차이점이 훨씬 많다. 트럼프 대통령이나 고위 관료 중 누구의 입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온 적은 없다. 흥미로운 가설이지만 설득력은 떨어진다."

레이건 대통령은 1980년대 소련과의 군비경쟁에 나서 ‘스타워즈 계획’에만 700억달러(약 82조5000억원)를 투입했고, 미국과 군비확충 경쟁을 견디지 못한 소련은 결국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중국과 전면적인 무역전쟁에 나선 것을 레이건 주도의 미·소 군비경쟁과 비슷한 시도로 보고 있다. 상대방이 소련에서 중국으로 바뀌었고, 군비경쟁이 관세경쟁으로 변했을 뿐 압도적인 힘을 바탕으로 경쟁자가 제풀에 나가떨어지게 하려는 의도는 비슷하다는 이야기다.

일본은 미·중 갈등 속에서 미국에 ‘올인’한 모양새다. 한·미 관계에 영향은 없을까.

"한국과 일본은 호주와 더불어 아시아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들이다. (과거사 문제 등으로 가깝고도 먼) 한·일 관계의 특수성은 미국도 잘 알고 있다. 이들 세 나라와의 굳건한 동맹 관계는 앞으로도 변함없이 유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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