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23) 9단의 눈부신 활약 속에 여성 바둑계의 전설 루이나이웨이(芮乃偉·56) 9단이 쌓아온 화려한 업적이 위협받기 시작했다. 최정이 루이의 기록을 모두 갈아 치울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세계 바둑 역사를 수놓은 두 여걸 중 누가 역대 최강일까.

두 기사는 활동 시기와 무대가 달라 기록을 같은 저울에 올리기엔 무리가 있다. 2010년 입단한 최정은 프로 생활 10년째이고, 82년 4단으로 프로 생활을 시작한 루이의 전성기는 20여 년 전 지나갔다. 시대 환경과 난도(難度) 차이를 감안해야 한다는 전제 아래 두 거물의 기록 창고를 함께 열어봤다.

2014년 제5회 궁륭산병성배 결승서 격돌 중인 최정(오른쪽)과 루이나이웨이. 두 기사는 전성기가 서로 다른 가운데서도 6판을 겨뤄 각각 3승3패를 기록 중이다.

획득 타이틀 수는 최정이 총 13회, 루이는 36회다. 국제 대회에선 최정이 4번, 루이는 8번 우승했다. 최정의 세계 제패가 궁륭산병성배(3연패)에 집중돼 있는 반면, 루이는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잇따라 열린 국제 여성 대회를 거의 독식하다시피 했다.

루이의 우승 횟수엔 남녀가 함께 겨룬 혼성 대회서 거둔 우승도 2회나 포함돼 있다. 특히 한국에 머물던 2000년 국수전서 이창호·조훈현을 연파하고 거둔 우승은 세계 바둑 역사상 여성이 메이저급 혼성 타이틀전을 제패한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남아있다.

세계 메이저 무대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본 여성도 루이다. 93년 열린 제2회 잉씨배서 이창호를 제치고 4강까지 진격했다. 정치적 이유로 녜웨이핑 등 중국 기사들이 빠지긴 했지만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루이는 2000년 제5회 LG배 등 세계 8강에도 세 차례나 올랐다.

최정은 LG배에서 2번, 삼성화재배에서 1번 세계 16강 대열에 진출해 루이를 맹렬히 추격하고 있다. 그러나 루이가 1986년, 1987년 두 차례나 중·일 슈퍼대항전에 출전해 호성적을 올린 데 비해 최정은 아직 농심배 등 혼성 단체전에서 국가대표로 선발된 적이 없다.

당대 최고수와 대결한 전적에서도 아직은 루이가 최정보다 앞서 있다. 루이는 이창호와 5승 5패, 조훈현에겐 3승 7패를 기록했다. 반면 최정은 박정환과 한 판, 신진서와 세 판을 겨뤄 아직 판 맛을 보지 못했다.

현 여성 세계 최강이 최정이란 점엔 누구도 이의가 없다. 비공식 세계 랭킹 사이트 '고레이팅'도 최정을 압도적 여성 1위(전체 53위)로 올려놓았다. 하지만 최정은 여성 2위 위즈잉(전체 161위)전 열세(13승 17패)부터 빨리 풀어야 할 처지다. 장쉬안·조혜연 등의 거센 저항 속에서도 고레이팅 20위권을 수년간 유지했던 루이와 비교된다.

결론적으로 최정은 아직 거목 루이를 넘어서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 20대 초반으로 막 전성기에 진입한 단계다. 전문가들은 최정이 현재의 상승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루이가 쌓은 높은 벽을 차례로 허물어 갈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