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결혼

엘리 J. 핀켈 지음|허청아·정삼기 옮김
지식여행|468쪽|2만2000원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자전 소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이혼 후 '영적이고 개인적인 탐험'을 떠난 30대 중반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다. 여행이 끝날 무렵 주인공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인 체하는 것에서 해방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며 발리에서 만난 남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사회심리학 교수인 엘리 핀켈은 길버트의 두 번째 결혼이 '새롭게 발견한 자아를 제대로 드러낼 결혼'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핀켈은 "자아 발견과 진정성이라는 주제가 이 시대 미국 문화에서 매우 중요하며, 사랑과 결혼생활에도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2017년 출간한 이 책에서 핀켈은 "현재 미국의 결혼은 '자아 표현'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수많은 사람이 자아 표현에 대한 과도한 기대 때문에 결혼생활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주장한다.

핀켈은 미국 결혼의 역사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식민지 시대부터 1850년까지의 '실용의 시대'에 결혼은 주로 배우자들이 서로의 기본적인 경제와 생존 욕구를 충족시키는 '실용적인 측면'을 강조했다. 산업화와 함께 '사랑의 시대'가 왔다. 임금노동자가 많아져 남성 혼자서도 기본 경제와 안전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게 되면서 결혼에서 사랑 같은 감성적 요인이 중요시되었다. 1965년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여성운동 등 반문화혁명은 미국인들에게 자신을 발견하고 '내적인 삶의 의미'를 탐구할 것을 촉구했다. 결혼에서 부부가 서로의 자기 발전 욕구 충족을 돕는 자아 표현적인 면이 강조됐다. '자아 표현의 시대'가 온 것이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한 장면. 첫 결혼에 실패한 여주인공은 ‘자아 탐구 여행’을 떠나고,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주는 남자를 만나 재혼한다.

'미켈란젤로 효과'는 '자아 표현을 위한 결혼'의 핵심이다. 미켈란젤로가 조각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돌덩이에 원래 깃들어 있던 조각품의 형태를 '드러내는' 것이라 보았듯, 배우자를 나의 진정한 자아를 끌어내 주는 상대로 여기는 것을 말한다. 잭 니컬슨과 헬렌 헌트가 주연한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미켈란젤로 효과'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결별을 고하는 헬렌 헌트에게 잭 니컬슨은 말한다. "당신은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

그러나 '자아 표현'이라는 고차원적인 욕구를 결혼에서 충족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자아 표현의 시대'가 도래한 1965년부터 1980년까지 미국의 이혼율은 급증했다. 결혼생활이 기대에 못 미친다고 생각하는 부부의 비율도 증가 추세다. "사람들이 한 사람을 상대로 한때 마을 공동체가 감당하곤 했던 모든 것을 기대한다"는 부부상담가 에스더 페렐의 말처럼, 기혼자들이 배우자에게 예전보다 훨씬 더 의존하고 있지만 서로에게 투자하는 시간은 갈수록 줄어든다. 일과 육아에 치인 현대사회의 부부들은 오롯이 둘만의 시간을 가질 여유가 없다. 저소득층 부부는 고소득층에 비해 시간을 내기가 더 어렵다. 야간·주말 근무가 빈번하고, 휴가나 병가를 내려 해도 무급이나 다름없어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해법은 단순하다. 핀켈은 "상황에 따라 결혼에 대한 기대치를 조정하라"고 조언한다. '훌륭한 결혼'이 물론 좋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결혼'도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핀켈 자신이 그렇게 하고 있다. 그는 "아이가 태어난 후 부부관계에 위기가 왔다. 서로에게 개인적 성장과 자아 표현의 조력을 기대하면 상황이 더 악화될 것 같아서 기대치를 내려놓기로 했다"고 털어놓는다.

현대의 결혼을 '자아 표현'으로 해석한 관점이 신선하다. 미국 사례를 다뤘지만 우리 현실과 부합하는 측면도 많다. 다만 "부부간 성관계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 합의하에 '아웃소싱'을 고려해볼 수도 있다"는 내용은 국내 정서상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원제 The All-or-Nothing Marri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