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경찰 과거사를 조사 중인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조사위)가 29일 "제주 해군기지 건설 당시, 경찰이 반대 집회를 막는 과정에서 시위대를 폭행하고 과잉 진압했다"는 취지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위 유남영 위원장은 "(경찰이) 반대 주민의 활동을 저지하는 방패 역할을 했다"며 "정부가 피해자에게 사과하라"고 했다. 하지만 경찰 내부에서는 "경찰관 폭행 등 시위대의 불법·폭력 행위는 언급하지 않은 편파적 조사"라는 의견도 나왔다.

제주 해군기지는 노무현 정부 때 처음 건립이 추진됐다. 2011~2012년 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시민단체 관계자들이 공사를 막아 공사가 14개월간 지연됐다. 2014년 대법원은 불법·폭력 시위로 기지 건설을 지연시킨 7명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해군은 세금으로 건설사에 공사 지연 비용 273억원을 물어줬고, 이후 2016년 시위대에 구상금 34억5000만원을 청구했다.

이번 조사위 보고서는 기지 건설 반대 집회에 대한 경찰의 대응에 초점을 맞췄다. 조사위에 따르면 2011년 집회에 참가한 양모씨는 업무 방해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는 과정에서 경찰관에게 복부를 1대 맞았다. 이 경찰관은 상해 혐의로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조사위는 "대치 중 주민의 얼굴을 때린 경찰관도 있다"며 "강정마을 사건은 국책 사업 갈등 관리의 가장 나쁜 사례"라고 했다.

조사위는 이날 당시 시위대의 불법·폭력 행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시위대는 공사장 펜스에 구멍을 뚫어 불법으로 공사장에 들어가고, 시위대를 연행하려는 경찰을 막는 등 법 집행을 방해했다. 2014년 대법원은 반대 시위 도중 경찰관을 폭행한 문정현 신부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적법한 공무 집행을 방해하고 경찰을 폭행한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날 조사위의 발표를 놓고 "문재인 정부가 제주 해군기지 사건을 다시 쓰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첫해인 2017년 12월 해군이 청구했던 구상금을 포기했다. 작년 10월 제주 강정마을을 찾은 문 대통령은 반대 시위로 유죄를 받은 사람들에 대해 "사면·복권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2월 문 대통령은 17명을 사면했다.

경찰청은 조사위의 조사 내용과 권고 사항을 존중한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제도 개선 등 권고 사항은 적절한 때 이행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2017년 8월 발족한 조사위는 9명 중 6명이 민변 출신 변호사, 시민단체 관계자 등 외부 인사로 구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