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 넓은 와이드팬츠에 말끔한 재킷, 귀 위로 올려붙인 숏커트. 영락없는 '프로페셔널 비즈니스 퍼슨'의 모습이었다. 조안 리(한국명 이조안·74) 스타커뮤니케이션 회장은 "서울올림픽을 준비하며 각국 대사와 장관에게 '서울은 북한 테러에서 안전하다'는 확신을 주려 동분서주했다"고 회고했다. "만족할 줄 모르는 기질이 한국을 여기까지 끌어왔지만, 들어와 보니 시위가 너무 많아요. 한국이 이렇게 발전을 했는데…."

최근 서울에서 만난 조안 리 회장은 "평소 패션에도 관심이 많다. 옷을 고르고 입는 순간이 즐겁다"며 웃었다. 그는 과거 비즈니스 부문 '패션 피플'로도 유명했다.

최근 서울에서 만난 '국제 비즈니스계의 퍼스트레이디' 이 회장은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고국 땅을 밟았다"며 웃었다. 1980년대 국제 네트워킹 홍보 회사의 회장으로 한국과 국제무대의 가교 역할을 했던 그는 이번 방문 때 서강대동창회에 고인인 남편 이름을 딴 길로연장학금으로 1억원을, 박영석탐험문화재단·여성신문·국제백신연구소에 각 1000만원을 기부하고 갔다. "있는 것 다 내놓고 갈 준비"라고 했다. 2000년 무렵 뇌출혈과 신부전증을 연이어 겪고 6년 전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사업을 정리, 큰딸이 있는 미국으로 떠났다. "그땐 길어야 3개월 살까 했죠. 늘 긴장을 풀 수 없어 운동 갈 때도 출근 때처럼 정장을 입고 나가는 게 버릇이 됐어요."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 1973년 조선호텔 국제 홍보 코디네이터로 외국 기업·정부 소통을 도맡았다. "외국 귀빈이 방문하는 호텔에서 좋은 인상을 주는 게 애국이라 생각했다"고 했다. 1977년 스타커뮤니케이션을 설립, 1980년 불안한 정세에서도 각국 대사를 설득해 국내 최초로 스위스·독일 등 유럽 7국이 참여하는 코엑스 국제산업박람회를 유치했다. "그때 세계 신기술을 한국에 공급하려 정부 차원의 사업 요청도 많았죠. 유럽 정부는 물론 캐나다, 미국의 다국적 기업과도 일했어요."

당시 '여성 사업가'가 흔치 않았기 때문에 어려움도 많았다. "명함을 보고 당황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여자라서 안 된다는 생각은 해 본 적 없었어요." 1986년 FX(차세대 전투기) 사업 때 미국 맥도널더글러스의 FA18 한국 판매 홍보를 따낸 일화는 유명하다. "제안서를 낸 세 회사 중 최고 평가를 받았는데도 '방산업에 여자 회장 회사를 택하면 한국 정부가 거부감을 갖지 않겠느냐'는 답을 들었죠. '내가 여자인 건 바꿀 수 없으니 앞으로 나와 만나려면 1시간에 300달러를 내라'며 전화를 끊었어요. 일주일 뒤 '이런 배짱을 가진 여자면 할 수 있겠다'며 연락이 왔습니다."

이 회장은 스물셋 나이에 26세 나이 차를 극복, 서강대 초대 학장이던 고 케네스 킬로렌(한국명 길로연·1919~1988) 신부와 로마 교황청 허락을 받고 결혼식을 올렸다. "교회는 사랑이고, 하느님은 사랑이신데 진실한 우리 사랑을 막겠느냐는 그분의 말, 아직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이때를 회상하며 쓴 에세이 '스물셋의 사랑, 마흔아홉의 성공'(1994)은 출간 1년 만에 70만부가 팔렸다.

기업인을 꿈꾸는 여성들에게 "닮고 싶은 사람을 멘토로 삼고, 자기 철학이 분명해야 흔들리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일주일에 3일 신장 투석, 고단함 속에서도 배움을 쉬지 않는다는 그는 "요즘엔 매일 인터넷을 통해 미국 석학 강의를 듣는다"고 했다. "도전을 망설이는 분들께 이젠 자유로운 세상이니 겁내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오늘이 마지막일 수 있으니 최선을 다하자' 저는 지금도 그렇게 매일을 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