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검찰청 앞에 '포토라인'이라는 것이 언제 생겼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피의자가 그곳을 통과할 때마다 역겹거나 민망스러워서 저런 포토라인은 없애는 것이 낫지 않은가 생각했다. 국민의 호기심을 어느 정도 충족해 주는 측면은 있는지 몰라도 죄 없는 피의자가 굴욕을 당하기 쉽고 피의자에게 소명하는 기회는 전혀 되지 못하니 순기능은 거의 없지 않은가? 그런데 유튜버 B씨가 보석으로 출소해서 제일 먼저 주장한 것이, 포토라인을 피의자가 언론과 국민을 향해서 자기 입장을 소명할 기회로 만들라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정말 그렇게 운용될 수 있다면 국가 정의를 진작하는 데 획기적으로 기여할 것 같다.

사실 국민이 (편파적 또는 불충분한) 언론 보도나 유언비어로 부정확하게, 또는 왜곡되게 알고 있는 사건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까 피의자들에게 원한다면 자신들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들을 바로잡고 그들의 입장을 천명할 기회를 주는 것이 국가의 도리이자 국가적 이익이 아닌가? 만약 최순실이 20분간 온 국민을 향해서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면 그녀에 대한 억측이 반감될 수 있지 않았을까? 이재수 장군이나 박찬주 장군도 포토라인에서 20분간 국민에게 소명할 기회를 얻었더라면 본인들의 신상과 군의 위상에 가해진 손상을 크게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새삼 안타깝다.

20세기 후반 미국의 뛰어난 유태계 작가 버나드 맬러머드의 '수선공'은 20세기 초에 러시아에서 일어난 '베일리스 사건'을 토대로 쓰였다. 제정 말기 러시아의 한 유태인 수선공이 청천벽력같이, 종교적 동기에서 러시아 소년을 살해하고 피를 모조리 뽑았다는 혐의로 검거된다. 유태인에 대한 증오를 러시아의 온갖 병폐와 모순에 대한 국민 불만의 분출구로 삼기 위해서였다. 소박한 수선공은 2년여를 암흑 독방에 갇혀 형언할 수 없는 굴욕과 고초를 겪으며 오로지 기소되어 재판을 받겠다는 염원으로 버틴다. 살인범으로 국가 대사면에 포함해 주겠다는 제안도, 살인을 인정하기만 하면 재판 후에 몰래 국외로 보내주겠다는 회유도 거절하고…. 결국 정식 재판을 받으러 재판정에 출두하는 날, 그는 마차 속에서 차르에게 국민의 도탄에 대한 책임을 묻고 그를 살해하는 환상을 경험한다. 길가에는 그를 보려는 시민의 대오가 겹겹이 늘어섰고 몇 명은 그에게 손을 흔들고 그의 이름을 외친다. 그가 얼마나 군중에게 자신의 사연을 호소하고 싶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