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에게 "고아원에 보내버리겠다"고 위협하거나, 벌을 준다고 자녀를 벌거벗겨 집 밖에 내보낸 부모는 아동 학대로 경찰 수사를 받을 수 있다.

경찰청은 "지난 22일 전국 경찰서에 '아동 학대 수사업무 매뉴얼'을 배포했다"고 24일 밝혔다. 최근 10년간 아동 학대 관련 법원 판결 50여 건을 분석해 57가지 아동 학대 사례를 소개했다. 91쪽에 달한다.

전국 255개 경찰서 아동 학대 수사 담당자들은 앞으로 새 매뉴얼을 근거로 보호자의 행위가 훈육인지 학대인지를 판단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훈육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물리적 폭력, 언어 폭력을 수반한 훈육은 학대일 수 있다는 관점에서 사건을 수사하게 된다"고 했다. 아동 학대 사건과 관련해 지금까지는 수사 절차·법령을 다룬 간이 지침만 있었다.

새 매뉴얼에 따르면 '훈육'은 '바람직한 행동을 가르치기 위해 평정심을 유지한 상태에서 타당한 방법으로 하는 교육'이다. 부모가 이 기준을 넘어서는 행위를 할 경우 일단 아동 학대로 의심하게 된다.

경찰은 이번 매뉴얼에서 아동 학대 유형을 신체적·정신적·성적 학대 등으로 분류하고 총 57개 사례를 소개했다. 아이가 탄 유모차를 수십 차례 세게 흔들거나 아이의 손발을 묶는 행위, 아이를 꼬집거나 물어뜯는 경우 신체적 학대에 해당한다. 훈육이 목적이더라도 자녀의 몸에 손바닥 자국이 남을 정도로 때렸다면 학대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하게 된다.

아이가 운다며 불 꺼진 방에 가두거나, 자주 욕설을 하고 "고아원에 보내겠다"고 위협하는 것, 잘못을 따진다며 벌거벗겨 문밖에 세워두는 행위 등은 아이 정신 건강과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신적 학대 유형이다. 부모나 보호자가 다른 형제자매와 비교해 차별하거나, 친구와 심하게 비교하는 것도 정서적 학대에 해당할 수 있다. 부모가 자녀를 집 안에 두고 가출해버리는 행위, 경제적 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학교에 보내지 않는 행위 등도 수사가 필요한 아동 학대 유형에 포함됐다.

경찰이 아동 학대 수사 매뉴얼까지 만든 것은 매년 가정, 어린이집 등에서 수만 건의 어린이 학대 신고가 접수되기 때문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작년에만 약 2만4433건의 아동 학대 사건이 일어났다. 하루 평균 67건꼴이다.

하지만 경찰이 막상 수사를 하려면 부모나 보호자가 "훈육 차원에서 그랬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경찰관에 따라서도 학대를 보는 기준이 다를 수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피해자 입장인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수사 매뉴얼을 만들었다"며 "부모가 훈육이라고 주장해도 매뉴얼에 나오는 학대 사례와 비슷한 경우 적극적으로 수사하겠다"고 했다.

경찰이 만든 새 수사 지침에 대해 "전보다 발전했다"는 의견과 "이상적이지만 추상적이어서 실제 적용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경찰청 관계자는 "현재 법원은 학대 행위 정황뿐 아니라 아이의 양육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아동 학대에 대한 판결을 내리고 있어 매뉴얼에 나오는 행위가 무조건 유죄는 아니다"라면서도 "경찰 수사관이 아동 학대 의심 정황을 포착한 경우, 매뉴얼에 소개된 다른 유형의 학대 정황은 없는지 수사하도록 안내하는 기준이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