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 번화가인 암스텔란트 경찰서 앞 사거리.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신호등이었다. 그런데 심상치 않다. 차들이 물 흐르듯 사거리를 통과했다. 신호등이 차를 막는 일이 거의 없었다. 셋, 둘, 하나…. 마지막 차가 사거리를 지나가고 뒤따라올 차가 없음이 확실해지자 신호등은 초록에서 주황, 그리고 곧 빨강으로 바뀌었다. 멀리서 차가 다가오자 신호는 다시 초록으로 바뀐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치 누가 차가 언제 그만 오나 관찰하다가 신호를 바꿨나 싶었다.

이달 초 암스테르담에서 만난 이 기묘한 신호등은 인근에 부착된 카메라를 통해 실시간 교통량 데이터를 파악, 교통 신호를 자동으로 바꾸는 이른바 '스마트 신호등'이었다. 네덜란드가 처음으로 도입했고 영국 등이 시범운영 중이다. 정부·기업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해 서울 등 다른 대도시는 의외로 도입이 더디다.

신호등만이 아니었다. 네덜란드는 나라 전체가 거대한 디지털 교통 실험실 그 자체였다. 신기술을 총동원해 교통 문제 해결에 매달리고 있었다. 예를 들어 암스테르담이 속한 노르트홀란트주(州)는 2012년 세계 최초로 '지능형 교통 체계(ITS·Intelligent Transportation System)'를 도입했다. 디지털 첨단 기술을 도로에 접목한 교통 체계를 일컫는다.

암스테르담의 주요 신호등은 생물처럼 느껴졌다. 한국 신호등이 '초록불 2분 30초, 좌회전 1분, 빨간불 2분 30초'처럼 미리 정한 규칙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인다면 암스테르담의 신호등은 교통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최적의 '조합'을 찾아낸다. 교통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막힌 곳은 뚫어주고(초록), 차가 없는 쪽은 차가 나타날 때까지 정지 신호(빨강)를 띄워두는 식이었다. 스마트 신호등의 가장 대표적인 효과는 '그린 웨이브(green wave)'다. 특정 차량이 어떠한 목적지까지 가면서 빨간불 신호등을 만나지 않고 계속 초록불을 만나게 하는 것이다. 스마트 신호등을 도입하고 나서 교통 체증은 약 20% 감소했다고 한다.

이 똘똘한 신호등은 어떻게 작동하는 것일까. 신호등을 개발한 네덜란드 회사 '테크놀루션'의 폴 반콘링스브루겐 개발 담당자를 만났다. "지난 6년 동안 신호등과 도로 곳곳에 달린 카메라 등을 통해 수집한 방대한 데이터(빅데이터)를 인공지능이 분석합니다. 이를 통해 최적의 신호를 언제 어디에 보내면 되는지 알아내 쏘는 겁니다." 현재 노르트홀란트주는 270개의 신호등과 180개의 카메라가 실시간으로 교통 데이터를 수집한다. 스마트 신호등 수를 2022년까지 2000여 개로 늘리는 것이 목표란다.

네덜란드의 대부분 도시는 교통의 모든 요소를 디지털 세상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틸뷔르흐는 스마트 교통 스타트업 '디니크'와 협력해 어르신이 스마트폰 앱 버튼을 누르면 보행 신호를 연장해주는 '크로스워크'란 시스템을 도로에서 운영하고 있다. 남부 도시 주테르메이르는 스마트 주차를 개발했다.

서울시에 등록된 자동차는 312만 대로, 나날이 늘고 있다. 정보기술(IT) 강국이라 하지만 도로가 더 똑똑해졌다는 느낌은 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정부와 기업이 손잡고 스마트 교통을 개발하는 네덜란드의 모습이 인상깊었다. 서울에 도착해 여전히 막히는 길을 따라 집으로 가는 도중, 테크놀루션 반콘링스브루겐씨의 말이 계속 떠올랐다. "교통은 단순한 자동차 제조업이나 토목 산업이 아닙니다. 방대한 데이터를 동원한 최첨단 IT 산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