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됨됨이를 따질 때 중국인들은 일정한 잣대가 있다. 남보다 먼저 제 밑천을 드러내는 사람에겐 결코 높은 점수를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 의중을 드러내지 않고 셈에 셈을 거듭하며 신중하게 처신해야 중국에서는 ‘된 사람’ 취급받는다. 우리말 사전에도 올라 있는 성부(城府)라는 한자 단어가 있다. 중국에서는 ‘속이 깊은 사람’의 의미다. 이 말은 원래 도시의 성벽, 큰 저택의 담을 가리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의 담을 쌓아 자신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라는 새김을 얻는다. 마음속에 이런 담을 쌓아 좀체 속내를 상대에게 드러내지 않는 이가 중국인에게는 ‘괜찮은 사람’이다. 가슴에 그런 속성을 지녔다는 흉유성부(胸有城府)라는 성어도 나왔다. 그에 비해 자신이 지닌 칼끝을 훤히 드러내면 어리석은 사람이다. 성어 봉망필로(鋒芒畢露)의 경우다.

자신의 재주를 과시하며 남을 압도하는 이도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성기릉인(盛氣凌人)이라는 성어는 깝죽대며 남을 업신여기는 '팔불출'과 동의어다. 겉은 우둔해 보여도 속은 지혜로운 외우내지(外愚內智), 밖으로는 원만해도 내 속으로는 엄격한 외원내방(外圓內方)이 사람 됨됨이를 놓고 중국인이 가장 높게 치는 스타일이다.

개혁·개방 뒤 중국이 대외정책의 근간으로 삼았던 도광양회(韜光養晦)도 같은 맥락이다. 자신의 장점[光]을 감추고[韜] 단점[晦]를 보완하라[養]는 뜻이다. 그러나 중국 당국이 이 틀을 벗고 뭔가를 해서 남에게 보여야 한다는 ‘유소작위(有所作爲)’의 구호로 돌아선 지 꽤 오래다. 그 결과는 요즘 벌어지는 미국의 거센 견제다. 과도하다 싶은 자기중심적 민족주의, 지나친 권력 집중화로 중국 공산당이 신중했던 예전의 의사 결정 구조에서 멀어지며 빚어진 현상으로 보인다. 중국이 ‘성부’라는 지혜로운 전통을 너무 쉽게 벗어던졌다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