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에거 CEO 크리스토프 까이요. 세련된 모습으로 영화 배우 휴 잭맨으로 오인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패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캘빈 클라인, 미술계 파워 딜러 래리 가고시안…. 세계 패션·아트계의 '큰 손'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작품을 보는 '남다른' 눈으로 현대 예술계를 한 차원 도약시킨 주인공들이라는 것과 그들의 고아(高雅)한 취향은 '리에거(Liaigre)'로 집결된다는 점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인테리어·가구 디자이너 크리스찬 리에거의 손에 그들의 안식처이자 가장 내밀한 부분, 바로 집안 인테리어를 맡긴 것이다.

1980년대 중반 파리 쇼룸을 연 뒤, 고급스러우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절제된 리에거의 디자인은 창의적인 이들 눈앞에 독보적인 독창성으로 기록됐다. 한창 눈앞의 화려함에 치중하던 시기에 프랑스적인 장인 정신을 모던하게 풀어내는 리에거의 작업 방식은 취향이 까다로우면 까다로울수록 찬사를 보내게 했다. 파리의 몬타렘버트 호텔(1990)과 뉴욕의 머서 호텔(1997)을 비롯해 세계 유명인사들의 전용기, 요트 인테리어 작업 등 리에거의 손길은 열광적인 마니아층을 만들어냈다.

'궁극의 디자인'이라 불리는 리에거가 지난 4월 국내 최초이자 전 세계 29번째로 서울 청담동에 쇼룸을 열었다. 건물 내부 2개 층에 걸친 400㎡ 규모. 파리 생토노레 플래그십 스토어의 디자인을 반영하되 한국적인 요소를 더했다. 쇼룸 오픈 현장에서 만난 크리스토프 카이요(Caillaud) 리에거 CEO는 "유럽에 이어 미국 시장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아시아 시장으로 확장하면서 5년전부터 한국에 선보이고 싶었다"면서 "과거 내가 패션계 종사할 때부터 명성을 익히 알았던 신세계인터내셔날의 패션에 대한 탁월한 경험과 우리 철학에 대한 깊은 이해도를 보았을 때 단연 최고의 파트너라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프랑스 유명 비즈니스 스쿨인 ESSEC출신으로 은행에서 M&A 전문 경력을 쌓았다. 패션 브랜드 장 폴 고티에의 CEO로 활약한 뒤 2009년 리에거로 합류했다. 2016년 크리스찬 리에거가 회사를 떠난 뒤에도 고유의 정체성을 지키며 '크리스찬 리에거'에서 최고급 라이프스타일·디자인 브랜드인 '리에거'로 거듭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

―리에거는 '스타일리시함을 배제한 스타일(Style without being Stylish)'란 모토로 유명하다. 단순한 게 가장 어렵다는 철학을 보여주는 것 같다.

리에거 파리 쇼룸 내부.

"건축가로 출발한 크리스찬 리에거 디자이너는 '선'에 대한 대가였다. 완벽한 라인을 추구하면서도 심미적인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인체공학적으로도 편안하길 원했다. 선이 완벽하게 구상됐다 하더라도 이를 구현하기 위해 못 하나의 위치나 팔걸이의 높이 같은 것을 수개월, 길게는 수년간 테스트한다. 안 맞으면 과감히 버리기도 한다. 심플하기 때문에 남들은 쉽게 생각할 수 없는 가장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 '디테일이 완벽을 만들지만, 디테일이 완벽의 전부는 아니다'라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말이 생각난다. 프랑스 하면 대부분 화려하고 장식적인 디자인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그 모든 바탕에 장인정신이 깔렸다. 리에거는 30여년 역사지만 300년 이상 이어진 프랑스 장인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예를 들면 우리 공방엔 18세기에 만들었던 캐비닛을 그때 만들었던 방식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장인들이 있다. 과거의 헤리티지를 20세기 아르데코풍 장식미와 기능성, 화려함과 단순함이 공존하는 디자인으로 재해석해 21세기 리에거의 방식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백색 나무 소재를 많이 활용하지만 청동이나 라커 효과, 특수 소재로 콘트라스트(대조) 효과를 준다. 흰색, 베이지, 그레이, 토프와 브라운, 강렬한 블랙 컬러 등 깊고 영롱하며 대담한 빛깔에 옻칠한 코팅, 브러시드 된 마감 등 여러 요소를 균형감 있게 보여주면서도 평범함을 비틀어 경험과 발견의 즐거움을 준다. 또 예전엔 좀 더 매끈(sleek)하고 직선적이었다면 최근엔 따뜻한 컬러를 입히거나 곡선적인 디자인도 시도한다."

―가구, 조명, 액세서리 등 400여개 이상의 제품군을 보유하고 있다. 쇼룸이 아름답긴 하지만 모든 제품을 고객이 체험해 볼 수는 없다. 맞춤 주문을 의뢰하는 이들이 상당할 텐데 어떻게 고객의 취향에 대응하는가.

"기본 디자인을 완전히 뒤틀지 않는 이상 모든 맞춤은 가능하다. 예를 들어 얼마 전 파리의 한 고객은 3m짜리 소파가 마음에 든다며 반드시 3m2㎝에 맞춰달라고 했다. 그에게 2㎝ 차이란 완벽함의 결정적 조건인 셈이다. 고객 취향을 최대한 파악하기 위해 생활 습관 같은 평소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한다. 아이들은 많은지, 파티를 많이 하는지, 나무의 소재 여부나 광택 있는(glossy) 마감 혹은 매트(matt)한 스타일을 원하는지 굉장히 많은 질문을 통해 최적합의 디자인을 찾는다. 또 사진을 단계별로 찍은 뒤 의견 교환을 충분히 한다. 에너지 소비가 많아 보이지만 그게 바로 고객들이 우리를 신뢰하고 찾는 이유다. 조명, 원목자재, 패브릭 공방 등 모든 공정이 100% 프랑스 장인들의 손길로 이뤄진다."

―브랜드를 안정적으로 꾸리고는 있지만 창업자이자 브랜드 상징인 리에거가 떠난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을 것 같다. 브랜드가 순항하기 위해 안팎으로 어떤 일을 했는가.

"10년 전 합류했을 때 주어진 과제가 '크리스찬 리에거'에서 '리에거'로 브랜드를 전환하는 것이었다. 과거에도 원맨쇼가 아닌 25명이 팀을 꾸려 일을 하고 있어 워낙 탄탄한 진용이었다. 2006년부터 디자인 수장을 한 포커 마이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18년간 브랜드에 몸담았고, 요트 디자인 총괄인 기욤 롤랑은 20년이나 됐다. 탑 클라이언트들은 이미 믿고 팬임을 자처했고, 나 역시 새로운 클라이언트를 발굴하기 위해 브랜드와 외부 세계와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한다. 브랜드를 가꾸는 데는 과거에 집착하며 후방 미러를 보는 게 아니라, 앞을 보고 새로운 전망을 던져주며 끌고 가야 한다. 그게 바로 나의 역할이다."

―상징적인 디자인이 많긴 하지만, 딱 하나만 고르자면, 죽기 전 이거 한번은 꼭 경험해봐야 한다고 추천할 만 제품은?

"브랑쿠시 조각에 영감받은 나가토 스툴이다. 재밌는 건 습도 등에 따라 갈라진 틈새(crack)나 굴곡이 다양하게 형성된다. 마치 생명체처럼 변화한다. 그래서인지 간혹 '내가 원하는 건 카탈로그에 있는 A였는데 왜 B가 오느냐'고 말씀 주시는 일부 고객도 있긴 하다. 만다린 체어도 꼭 경험하길 바란다. 편안하게 감싸 안는 느낌이다. 벽난로 앞에서 만다린 체어에 앉아 위스키 한잔하면 세상 모든 시름이 사르르 녹아버릴 안식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