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우리 정부에 '화웨이 보이콧'에 동참해 달라고 요구함에 따라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번지고 있다. 정부는 미국의 요구에 일단 "화웨이와 우리 사기업 간의 거래에 개입하기는 어렵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보였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기세로 볼 때 지금 같은 자세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관측이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협력하는 일본과 호주 등이 반(反)화웨이 전선(戰線)에 동참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동맹'인 우리 정부를 상대로 '우리 편에 서라'는 압박을 높여갈 가능성이 크다. 최근 워싱턴을 방문한 외교 소식통은 "화웨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과 (화웨이 통신 장비를 쓰고 있는) LG에 대해 묻는 사람이 많았다"며 "미국이 견고한 동맹의 척도로 이 문제를 끌고 들어올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그렇다고 미국 요구에 호응할 경우 예상되는 중국의 반발을 무시하기 어렵다. 한국의 대중(對中) 수출 비중은 미국·유럽연합(EU)·일본을 합친 것보다 많아 우리 경제의 중국 의존도는 상당한 수준에 와 있다. 2017년 한국은 중국에 1421억달러(약 170조원)어치를 수출했고 이는 전체 수출의 24.8%를 차지했다. 외교 소식통은 "사드(THAAD) 보복 때 중국은 미국 대신 '약한 고리'인 한국을 때렸다"며 "이번 사안의 경우, 중국의 보복 조치는 사드 배치 때보다 훨씬 고강도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사드 보복 여파로 2017년 한 해 동안 한국이 입은 직·간접적 피해를 최소 8조5000억원으로 추산하기도 했다.

예정된 외교 일정상으로도 우리 정부는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당장 다음 달 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이 예정돼 있고, 정부는 비슷한 시기 한·중 정상회담도 추진하고 있다. 북한 비핵화 협상을 교착 상태에서 풀어내기 위해 미국과 머리를 맞대야 하고, 중국에는 북한에 대한 역할을 주문·설득해야 하는 상황이다. 남주홍 전 국정원 1차장은 "비핵화 방법론을 놓고 생긴 미국과의 균열도 봉합하고, 지정학적으로 가까운 중국도 관리해야 하는데 화웨이 문제가 한국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사드 갈등 당시 우리는 애초부터 '안보 사안'으로 규정하며 일관성을 보여야 했는데 중간에 갈팡질팡하면서 얕보인 면이 있다"며 "화웨이 건도 우리 기준을 분명히 세워서 미·중 양국의 압박에서 벗어날 틈새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