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진 런던 특파원

이달 초 런던 리치먼드 지역 템스강에는 보트 수십 척이 정박해 있었다. 얼핏 유람선 같은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사람들이 사는 '집'이었다. 작년 4월 이곳에 이사 왔다는 니키 톰슨(47·사진)씨는 "시내 쪽 집세가 너무 비싸서 여기로 왔다"고 했다. 배는 보통 집과 다르지 않았다. 문패 달린 대문과 작은 정원을 지나 2층짜리 내부로 들어가면 거실 겸 부엌, 화장실, 방 3개가 있다. 3~4인 가족이 살기에 전혀 문제가 없다. 이 배 월세는 1200파운드(약 183만원)라고 했다. 리치먼드 지역에서 이 정도 집에 살려면 보통 2500파운드(약 380만원) 이상 내야 한다. 그는 "비 오고 바람 불면 집이 출렁거린다는 점만 빼면 살 만하다"고 했다.

영국 사회에서 '하우스보트'에 사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다. 영국 수로를 관리하는 캐널 리버 트러스트(Canal River Trust)는 올 3월 기준 영국 전역에서 1만5000명이 보트 생활을 하고 있다고 최근 발표했다. 캐널 리버 트러스트 관계자는 "런던 템스강에서만 5000여 명이 배에 살고 있다"며 "2012년에 비해 두 배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하우스보트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은 급격한 주거비 상승이다. 런던 집값은 전 세계 주요 도시 중 10위 안에 들 정도로 비싸다. 지난 2월 평균 집값은 47만 파운드(약 7억2000만원). 2010년대에 들어 40% 이상 올랐다. BBC는 "런던 동쪽 지역에서 젊은 층이 주로 사는 방 1개짜리 집 월세가 5년 전 495파운드(약 75만원)에서 최근 650파운드(약 99만원)로 30% 이상 올랐다"고 했다. 런던 동쪽은 그나마 집값·월세가 싼 지역이다. 배를 직접 사서 자기 집으로 개조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배는 100만 파운드(약 15억2500만원) 이상짜리도 있지만, 우리 돈으로 1억원대 미만도 많다. 젊은 층이나 서민들도 살 수 있다.

배에 살면 생활비가 적게 든다. 일단 렌트비가 싸다. 또 오래 정박하는 경우엔 1년에 보통 1만파운드(약 1525만원) 정도 정박료와 각종 세금도 내야 하지만, 2주에 한 번씩 장소를 옮기면 이마저 '공짜'다. 30대 보트 주민은 "다른 이에게 해가 되지 않으면 배는 어디든 댈 수 있다"고 했다. 일간 텔레그래프는 "정박료, 유지보수비, 보험료 등을 다 합쳐도 영국의 미친 집값에 비하면 하우스보트에 사는 게 훨씬 싸다"고 했다. 리치먼드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자연과 더불어 살 수 있다는 장점도 있어 특히 젊은 층에 인기가 높다"고 했다.

하지만 하우스보트에 대한 부정적 여론도 늘고 있다. 아무리 규제가 엄격하다고 하지만, 하우스보트에서 나오는 오·폐수와 오염 물질을 완벽히 차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수질 등 환경오염을 우려해 "정박료를 더 높이든지, 아예 강에서 사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하우스보트 수요가 늘면서 월세 가격도 올라 세입자 부담도 커지고 있다. 한 20대 하우스보터는 "보트 주민 중에는 생활비를 줄여보려는 나 같은 사회 초년생도 적지 않다"며 "월세가 적어 이곳에 왔는데, 이곳마저 월세가 오르면 우린 정말 갈 곳이 마땅치 않다"고 했다. 2주마다 보트를 옮길 경우, 전기·수도를 스스로 끌어와야 하고, 화장실 오수 등을 직접 처리해야 하는 부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