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준호 산업1부 기자

분기별로 1조에서 4조원대의 영업이익을 내던 우량 기업 한전이 부실기업으로 전락하고 있다. 지난 14일 공시한 한전의 1분기 영업 적자가 6299억원에 달했다. 자회사를 제외하면 손실 규모는 2조4114억원까지 늘어난다. 적자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으로 값비싼 LNG 발전 등을 늘렸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그런데 한전과 정부는 "탈원전 정책과는 무관하고, LNG 값이 올랐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원인 진단이야 다를 수 있다 쳐도 더 걱정되는 건 정부의 안이한 현실 인식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3월 21일 국회에서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으면 한전이 파산할 위험이 없느냐"는 질문에 "올 들어 한전의 수지가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현실과 정반대되는 답을 했다. "현재 에너지 정책 그대로 가더라도 2022년까지 (전기요금) 상승 요인이 거의 없다"고도 했다. 도대체 어떤 보고를 받고, 어떤 근거로 그런 답변을 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이 총리의 '부실한 현실 인식'은 이뿐이 아니다. 그는 우리나라 전력 생산에서 원전이 담당하는 비중이 40%가 넘는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23.4%에 불과하다. 전 정권 시절인 2016년에도 원전 비중은 30%에 그쳤다. 이 총리는 탈원전 비판 보도에 대해 "신문을 다 믿지 않는다. 보도가 잘못된 것이 많다"고도 했다. 누가 허위 보고를 하고, 듣고 싶은 보고만 듣는지 모르겠지만, 그른 말은 믿고 옳은 보도는 믿지 않는 셈이다.

한전은 1분기 원전 이용률이 75.8%로 전년 동기(54.9%) 대비 큰 폭으로 올랐는데도 적자가 발생했으니, 탈원전과 적자는 무관하다고 했다. 지난 2월에는 "올해 원전 이용률이 77.4%에 달해 흑자 전환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언제는 무관하다더니 원전 이용률이 한전 수지에 가장 큰 변수가 된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다. 1분기 원전 이용률은 작년에 비하면 많이 올랐지만 한전이 예측한 손익분기점엔 1.6%포인트 미달했다. 원전 이용률이 1%포인트 떨어질 때마다 1900억원의 영업 손실이 발생한다는 건 한전 스스로 분석해 내놓은 수치다.

LNG 가격 등락은 우리 뜻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1970년대 석유 파동을 겪은 정부가 에너지 자립을 위해 원전 건설에 박차를 가했던 것이다. 원전을 통해 화석연료 가격 변동에 상관없이 에너지 수급 안정을 이뤘다. 정책은 막연한 소문이나 괴담, 정치적 주장이나 '판도라' 같은 허구의 영화에 근거해 수립해서는 안 된다. 정부와 총리, 대통령은 제대로 된 자료와 지표를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