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 현직 교사 15명이 전하는 '교권 현주소'
38번째 스승의 날… 교사 87% "사기 땅에 떨어져"
"학부모가 더 무서워...소송 걸겠다며 돈도 뜯어내"
전문가들 "교사의 재량과 자율성 보장해야"

"애미없는 X...두들겨 맞아야 해"

지난 12일 경기도 남양주 한 중학교에서 2학년 학생이 교실을 잘못 들어간 교사에게 욕설을 내뱉었다. 이어 같은 반 다른 학생에게는 "저 새X 다른 반에 들어갔다. 좀 끌고 와라"라고 소리질렀다. 교사는 "욕설 정도야 워낙 비일비재해 이제 아무런 느낌도 없다"며 "교권(敎權)은 바닥에 떨어진지 오래"라고 토로했다.

일러스트=박상훈

교사의 권위가 급속히 추락하고 있다. 폭행과 모욕 등 교권침해 사례는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가고 있다. 일부 여교사들은 "학생들로부터 성추행을 당하는 일도 부지기수"라고 했다. 5월 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은 일선 초·중·고교 교사 15명을 인터뷰해 교권과 스승의 날에 대해 들어봤다.

◇이미 포기하고 사는 교사들 "이젠 놀랍지도 않아"
교사를 때리는 학생들이 매년 늘고 있다. 지난 14일 김도읍 자유한국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학생의 교사 폭행 사건은 2014년 86건에서 2018년 165건으로 5년 사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성희롱‧성폭행 등 성범죄도 같은 기간 80건에서 180건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 8월 인천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2학년 학생이 자신을 훈계하던 60대 교사를 폭행해 경찰에 붙잡혔다. 올 초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역사교사 김모(27)씨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음란물과 합성해 온라인에 유포한 사건도 있었다.

그래픽=김란희

일선 교사들은 "흔한 일"이라고 한다. 경기도 한 초등학교에 교사 김모(27)씨는 "초등학생이라도 고학년이면 외모에 민감하고 젊은 선생님을 좋아한다"며 "한 학생이 ‘선생님 얘가 쌤이랑 하고싶대요’라고 말하는 걸 듣고 귀를 의심했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문제를 제기하면 학교에서 그냥 덮고 넘어가라고 할 것이 뻔해 속으로 삭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성모(31) 교사는 "발육이 빨라 덩치가 큰 아이들이 욕설을 내뱉으며 위협할 때는 학생인데도 정말 무섭다"며 "보이X, 병X년 등 패륜에 가까운 말들을 교실에서 내뱉는데도 혼을 내면 더 괴롭힐까봐 무서워 그냥 지나치고 만다"고 했다.

학부모들도 무섭기는 마찬가지다. 지난달 28일 학생·학부모와 갈등을 겪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교사가 법원으로 부터 ‘순직’을 인정받았다. 초등학교 교사이던 A씨는 2016년 담임을 맡은 반 학생 B군이 자신의 지시에 욕설하거나 불만을 표시하고 반성문을 쓰게 해도 별 효과가 없자, 지도과정에서 부득이 욕설했다.

B군 부모의 거센 항의에 A씨는 결국 학생들 앞에 서서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욕설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B군 부모는 교사의 태도가 개선되지 않았다며 다시 학교 등에 민원을 제기했다. 5개월 동안 5차례나 계속됐다. A씨는 B군 부모와 면담하는 자리에서 맞을 뻔 한 적도 있었다. A씨는 정년퇴직을 한 학기 남겨둔 2017년 2월 사직서를 냈고, 처리 중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연합뉴스

◇교사 10명 중 8명 "사기 떨어져"...교권침해 보험도 등장
자연스레 교사들 사기도 심각하게 떨어졌다. 지난 13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발표한 교원인식 설문조사에서 교사 87.4%가 "사기가 떨어졌다"고 답했다. 2009년 55%에서 10년 사이 32%p(포인트)가 늘었다. 최근 교원 명예퇴직이 증가한 이유에 대해서도 교사의 89.4%가 '학생 생활지도 붕괴 등 교권 추락'을 원인으로 꼽았다.

교사들은 "교권을 보호해줄 제도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과거와 달리 학생을 조금이라도 혼내면 학부모의 민원과 학교측의 제재가 쏟아지고, 학부모 중 상당수가 소송을 제기하겠다며 합의금을 요구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부산의 한 중학교 교사 임모(32)씨는 "학교가 민원에 민감하니까 학부모들 중에는 트집잡기식 민원을 넣는 사람들이 있다"며 "교사는 조금만 잘못해도 크게 처벌이 가능하고, 소송 압박으로 합의금을 지불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무대응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

교사가 부당함을 호소할 수 있는 ‘교권보호위원회' 등의 기구가 있지만 있으나 마나다. 서울 한 초등학교 교사 이모(27)씨는 "교권보호위원회가 열리면 상급기관에 보고돼 ‘긁어 부스럼’만 된다는 교장·교감이 많아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면서 "교사의 권리는 쭈그러들고 학생의 권리만 팽창하고 있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교권 침해 보험’까지 등장했다. 한국교직원공제회가 출자한 더케이손해보험은 ‘교직원 안심 보장 보험’ 가운데 ‘교권 침해 피해 특약’을 지난해 4월 출시했다. 1년이 넘은 지금, 지난달까지 교권 침해 보험에 가입한 교사 수는 총 2400여명. 보험 관계자는 "보험에 가입하는 교사 수는 늘고 있는 추세"라며 "교권 침해를 인정받은 교사에게는 보험금 300만원이 지급된다"고 했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2000년대부터 교사에 대한 각종 행정 규제가 생겨나면서 교사의 재량권이 축소되기 시작했다"며 "심지어 교사가 학생들의 싸움을 말리거나, 기초학력이 부족한 아이를 따로 지도하는 것조차 민원의 대상이 되니 일선 교사들이 많이 위축된 상태다. 불필요한 행정적 규제를 없애고 교사의 재량과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것이 교권 확립에 첫걸음"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