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들 상당수는 여당 원내대표와 청와대 정책실장이 "관료가 문제"란 대화를 나눈 것과 관련,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노골적인 비판은 자제했다. 불만스러워도 청와대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 부처의 한 인사는 "문재인 정부 들어 전(前) 정권, 전전(前前) 정권 정책에 관여한 관료들이 '부역자'로 몰렸다"면서 "언제 불이익을 당할지 몰라 어느 정권 때보다 눈치를 많이 보고 있다"고 했다.

관가(官街)에선 '괜히 소신껏 나섰다간 화만 입는다'는 말이 정설이 됐다. 경제 부처의 젊은 공무원들 사이에선 정책 보고서를 만들 때 '과수'(과장 수정), '국수'(국장 수정) 등 누구 지시로 수정했는지 명확하게 표기한 파일을 만들어 둔다고 한다. "구두(口頭) 지시가 내려올 경우엔 녹음이라도 해놔야 하는지 고민"이라는 공무원도 적잖다. 한 사무관은 "나중에 문제가 되면 책임 소재를 추궁할 게 뻔하니 명확하게 하자는 것"이라며 "기록으로 남겨야 후환이 없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2주년을 맞아 경제 현안에 관해 낙관적으로 언급한 데 대해 "불안하다"는 경제 부처 공무원도 많았다. 기획재정부의 한 과장은 "외부 지인들을 만나면 '경제가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걱정된다"고 했다. 다른 부처의 사무관급 공무원은 "청와대가 정책 전반을 쥐고 흔드는데 정작 정책 부작용에 관한 책임은 우리가 질 가능성이 크다"며 "어쨌든 최대한 엎드리고 있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다른 사무관급도 "청와대 정책실장이 '공무원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지만 모든 건 청와대가 자초한 일"이라고 했다.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포렌식(디지털 증거 분석) 등 '강제 수사' 방식의 고강도 감찰이 수시로 이뤄진 것도 공무원들을 얼어붙게 하고 있다. 현 정부 들어 외교부에선 청와대의 '보안 조사'가 10차례 넘게 이뤄지면서 외교관들이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다. 작년 말엔 서기관·사무관 등의 개인 휴대폰을 걷어가고, 한 간부는 부처 인사 사안을 외부에 얘기했다가 문책을 당했다.

주요 현안을 다루는 부서엔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인사 기피 현상도 적잖다. 현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외교 적폐'로 낙인찍은 이후 합의 과정에 참여했던 실무자들까지 줄줄이 문책성 인사를 당하고 청와대가 대일(對日) 강경 노선을 고수하자, 일본 업무를 담당하는 동북아1과는 '기피 부서'가 됐다. 하반기 미국과의 협상을 앞둔 방위비 분담금 협상 대표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경제 부처에선 "젊은 사무관들이 정책 조율이 많이 필요한 부서로 가지 않으려 한다"는 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