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한다는 것, 돈을 번다는 것은 무엇인가. 빈부 격차는 왜 일어나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어른들에게도 쉽지 않은 실존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을 놓고, 미국의 17~18세 청춘들이 직접 흘린 땀과 눈물 속에서 자신만의 반짝이는 답들을 건져 올렸다.

미국 뉴욕타임스 경제팀이 올가을 명문대 입학이 확정된 고교생들이 대입 지원 시 제출한 에세이 중 '돈과 노동'에 관련된 글 다섯 편을 뽑아 지난 9일(현지 시각) 소개했다. 우리의 고3에 해당하는 다섯 학생은 모두 저소득층 자녀로, 생계를 위한 노동과 학업을 다년간 병행했다. 거액을 들여 만든 대입용 스펙으론 흉내 낼 수 없는, 고통스러운 경험에서 우러난 통찰이 빛난다.

켈리 쉴라이즈(17·위스콘신주립대 합격)양은 배관공인 아버지를 5년간 도왔다. 남자용 중고 청바지를 입고 기름때를 묻혀가며 하수관을 납땜하는 이 소녀는 "이건 끈기와 품위를 요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호숫가 대저택의 금 도금된 화장실에서 곰팡이가 핀 배수관을 들어내다 석면 가루를 마시기도 했다. 켈리는 "우리는 배관이라는 소우주에 혼돈을 일으켰다가 다시 질서를 창조한다"며 "인생은 오물을 받아들이고 그걸 청소하는 일련의 과정임을 배웠다. 세상은 자기 손을 기꺼이 더럽히는 이들이 만드는 것"이라고 썼다.

마크 가르시아(18·웨스트LA 칼리지 합격)군은 14세 때부터 LA 부촌의 일식당에서 설거지했다. 다음 날 치를 미국사 AP(대학 전공 선이수) 시험, 말썽쟁이 동생을 걱정하며 거품을 내 접시 수백 장을 닦았다. 자정에 집으로 가는 버스에 타서야 교과서를 편다. 멕시코 이민 3세인 마크는 파티에 다녀오는 또래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일하던 멕시코 옥수수밭부터 LA 식당까지, 우리 집안엔 엄격한 노동 윤리가 면면히 이어져 왔다"며 '아메리칸 드림'을 놓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종일 남의 집 일을 하고 온 엄마가 날 기다리다 지쳐 잠드셨다. 오늘 받은 팁을 엄마 주머니에 꽂아주었다"고 담담히 적었다.

애스트리드 리덴(18·컬럼비아대 합격)양은 미네소타주의 시골 도서관에서 사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사실 태어날 때부터 도서관에서 살았다"고 한다. 홀어머니가 어린 딸을 맡길 데가 없어 유아 자료실에 던져놓고 일하러 가면 종일 책을 읽었다는 것이다. 9세 때 전 재산인 몇 센트를 대출 연체료로 내고 '어린이의 재테크'란 책을 빌려 자본주의를 공부했다. 이후 사서로 일하며 열람실 컴퓨터로 국제 정세를 익히고, 책 읽는 서민들을 보며 인권 연구자의 꿈을 꾸었다. 애스트리드는 "도서관이 내게 세상으로 가는 길을 열어줬듯, 나도 언젠가 다른 이를 위한 도서관을 짓고 싶다"고 했다.

앤디 패트리킨(17·레들랜즈대 합격)군은 매사추세츠주의 휴양지 채텀시에서 청소한다. 새벽부터 쓰레기통 수백 개를 비우며 음식쓰레기 국물에 젖고 들끓는 모기에 물리기도 일쑤였다. 실어놓은 산업 폐기물에선 불이 붙기도 한다. 그런데도 "덤프트럭을 몰고 뻥 뚫린 도로를 달리는 건 나를 자유롭게 해준 최고의 경험"이라면서 "여덟 살 때부터 트럭에 빠져 온갖 지역의 쓰레기차를 보여주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6000명이 구독했다. 아예 '쓰레기 처리공학'을 전공할까"라며 짐짓 너스레를 떨었다. 사실 그의 꿈은 형법이나 정치학을 공부하는 것이다. 앤디는 "가난한 이들의 거주지와 백인 부자들이 잠시 놀다간 곳의 쓰레기는 확연히 달랐다"며 "쓰레기통은 누군가의 삶을, 사회를 보여주는 렌즈와 같았다"고 썼다.

빅토리아 오즈월드(18·하버드대 합격)양은 암환자 할머니 병시중을 포함한 가사노동 경험을 '낡고 더러운 갈색 식탁' 이야기로 풀어나갔다. 극빈층 가정에서 친할머니와 아빠, 두 언니와 살던 빅토리아는, 언니들이 하나둘 '식탁'을 떠나가고 할머니도 세상을 뜨자 아버지와 단둘이 힘들게 생계를 꾸렸다. "TV 케이블, 전화, 인터넷을 끊었고 물도 아껴 썼다. 수퍼볼 경기는 30년 된 라디오로 들었다"고 했다. 펜실베이니아의 과학 영재로 소문난 빅토리아는 최고 명문 하버드에 지원하면서 "앞으로 어떤 새로운 삶이 펼쳐지든, 모든 건 이 갈색 식탁에서 시작된 데 감사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