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문재인 대통령 취임 2주년인 9일 기습 미사일 발사를 재차 감행한 건 도발에도 꿈쩍 않는 미국에 대한 불만을 재차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은 지난 4일 이스칸데르급 탄도미사일(추정)을 발사했지만, 미국은 "단거리 미사일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이뿐만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FFVD(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와 "제재 공조"를 언급했다. 이에 북한이 도발 수위를 높여 대미(對美) 압박에 나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리 정부를 향해선 "미국의 눈치를 보지 말고 민족 공조에 나서라"고 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대남 도발의 수위를 점차 높여오고 있다. 지난달 16일 공군 부대를 찾아 비행 훈련을 지켜본 데 이어 17일엔 국방과학원에서 신형 전술유도무기 사격 실험을 참관했다. 당시 북한 매체는 사격 실험 사진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4일엔 미사일을 쏘고 다음 날 사진까지 공개했다. 발사체가 '미사일'임을 사실상 공표한 것이다. 대북 소식통은 "우리 정부가 '미사일로 보기 어렵다'고 하는 등 상황 관리에 들어가자 이번엔 사거리를 늘려 미사일을 발사한 것"이라고 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 출범 2주년에 맞춰 미사일을 쏜 것은 '미국을 설득해 제재 완화와 대북 지원에 적극 나서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김정은의 강경 일변도 정책은 어느 정도 예고돼 왔다. 그는 올해 신년사에서 '새로운 길'을 언급했다. 미국이 협상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대화가 아닌 '군사 노선'으로 돌아갈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불과 닷새 만에 도발 수위를 더 높인 건 대미 주도권을 잡으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은 "북한이 점차 도발 수위를 높이는 건 예상된 수순이지만, 닷새 만에 다시 도발에 나선 건 뜻밖"이라며 "그만큼 현 국면을 빨리 타개하고 싶다는 것"이라고 했다. 남주홍 전 국정원 1차장은 "김정은이 최소한의 유연성을 잃을 만큼 북한이 그만큼 다급해진 것으로 보인다"며 "'대북 식량 지원'이 언급되는 가운데 도발을 감행한 건 '구걸하려고 대화하는 게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미국에 던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북한의 도발에도 미국의 대북정책이 현재의 '신중론'에서 '강경 일변도'로 급선회하진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우선 미국이 '레드라인'으로 설정한 '핵실험·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까진 가지 않았다. 또 사실상 대선 레이스가 시작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정책 실패를 자인하기도 어렵다. 전성훈 전 원장은 "이번 발사체가 탄도 미사일이라는 결론이 나도 안보리 의장 성명 정도의 낮은 수위의 대응만 할 것으로 보인다"며 "바로 제재 강화 등을 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북한의 도발이 반복될 경우 미국 조야의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져 미·북 대화 재개는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당분간 도발 수위를 올리며 대미·대남 압박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이날 "조선이 제시한 시한 내에 미국 측이 그릇된 태도를 바로잡지 못하고 제3차 수뇌회담(정상회담)이 열리지 않는 경우 상황은 바뀔 수 있다"며 "핵 협상의 기회가 상실되면 핵 대결의 국면이 재현될 수도 있다"고 했다. 전날 노동신문이 '(핵·경제) 병진 노선'을 언급한 데 이어 '미국과의 핵 대결'까지 위협한 것이다. 특히 이날 미사일을 발사한 평북 구성은 2017년 준(準)중거리탄도미사일 북극성 2형, 중거리탄도미사일 화성 12형, ICBM인 화성14형 등을 쏜 곳이다. 모두 미 본토와 태평양의 미 군사시설을 사정권에 넣고 있는 전략무기들이다. 예비역 장성 A씨는 "평북 구성을 택한 것 자체가 대미 압박 의도를 노골화한 것"이라고 했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상반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방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방한, G20 회의 등 굵직한 일정이 많아 북한이 여기에 맞춰 도발 수위를 차츰 올릴 수 있다"며 "미국이 끝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중거리미사일 발사나 인공위성 발사체로 위장한 ICBM 발사도 가능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