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에 사는 주부 이모(53)씨는 가계부를 쓸 때마다 한숨이 난다고 했다. 이씨는 "10년 전 가계부를 보니 일주일치 식재료를 사는 데 7만~8만원이면 충분했는데, 요즘은 그때처럼 장을 보려면 15만~20만원은 써야 한다"고 했다.

한국에선 식료품 물가가 오르는 게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유통 구조 개선, 생산비 절감, 정부 정책 등으로 안정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떨어질 수도 있다. 특히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선진국 소비자들은 지난 10여 년간 저물가 시대를 살았다. 그런데 유독 한국만 먹거리 물가가 크게 올라 장보기가 겁나는 나라가 되고 있다.

한국 11년 새 쌀값은 100%, 당근·감자는 135% 올라

본지 기자들은 지난달부터 이달 초까지 서울과 미국 뉴욕, 일본 도쿄, 영국 런던 현지에서 식료품 물가를 조사했다. 이 가격을 2008년 코트라(KOTRA) 해외 무역관이 현지 조사한 물가 정보와 비교하면, 한국 물가가 얼마나 많이 올랐는지 실감할 수 있다. 본지 조사 20개 품목 중 11년 전 코트라 조사와 비교 가능한 10개 품목을 비교 분석했다. 세부 품목 차이나 계절적 요인 등으로 직접 비교가 어려운 품목 10개는 제외했다.

올해 서울 시내 대형 마트에서 쌀 1㎏을 사려면 4630원을 내야 한다. 그런데 2008년 코트라가 서울에서 조사한 쌀값은 1㎏당 2340원이었다. 11년 사이 쌀값이 두 배로 오른 것이다. 미국(27%)과 영국(8%)도 쌀값이 올랐지만 한국 상승률보다 크게 낮다. 우리처럼 쌀이 주식인 일본은 오히려 쌀값이 2008년보다 23% 떨어졌다. 도쿄 시내 대형 마트에서 2008년엔 쌀 1㎏을 사는 데 500엔이 필요했지만 올해는 384엔이 들었다.

채소 값도 한국이 많이 올랐다. 당근 값은 4국 중 한국만 비싸졌다. 2008년 서울에서 당근 1㎏은 1480원이었지만, 올해는 3480원으로 135% 뛰었다. 반면 미국은 1㎏당 5.49달러 하던 당근 값이 올해는 1.59달러로 71% 떨어졌다. 감자 가격도 서울은 136% 상승했다. 일본(113%)과 영국(72%)도 감자 가격이 10년 전에 비해 많이 올랐지만 한국보다는 상승 폭이 작았다.

전 세계적으로 우유 소비가 줄면서 우유 값이 하락하고 있는데도 한국은 우유 값이 올랐다. 미국과 일본은 25%, 10.5%씩 싸졌고, 영국은 11년 전보다 겨우 0.1파운드 올랐다. 그런데 한국만 2008년 1780원 하던 우유 1L 가격이 올해 2570원으로 44%나 뛰었다. 글로벌 브랜드도 한국에서 크게 뛰었다. 미국에서 맥도날드 햄버거 빅맥이 2.79달러에서 3.99달러로 11년 새 43% 오르는 동안, 한국 빅맥 가격은 2800원에서 4500원으로 61%나 뛰었다.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톨사이즈의 경우 한국은 3300원에서 4100원으로 24% 오르는 동안 일본은 340엔에서 350엔으로 10엔밖에 오르지 않았다. 11년 전 코트라 조사와 비교한 10개 품목 중 한국의 상승률이 가장 높은 품목이 8개였다.

10년간 식료품 물가 상승률 OECD 평균 2배

한국의 압도적인 식료품 물가 상승 폭은 객관적인 지표로도 확인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식료품 물가지수는 2008년에 비해 43.8% 상승했다. 10년 동안 전체 소비자 물가지수는 21.4% 올랐는데 장바구니 물가 상승률이 전체 물가 상승률의 배 이상으로 뛴 것이다. 반면 같은 기간 미국의 식료품 물가지수는 11.9% 올랐고, 일본도 12.1% 상승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OECD 평균(19.9%)이나 영국(22.2%)과 비교해봐도 한국이 배 수준으로 올랐다. 각국의 물가를 비교할 때 자주 인용되는 자료인 '빅맥지수' 순위에서도 서울의 상승세는 가파르다. 2008년 서울의 빅맥지수는 3.14로 전 세계 120국 가운데 24위였지만, 올해 1월 기준 서울의 빅맥지수는 4.02로 16위까지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