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 세종보, 철거서 존치로 반전 기류 - 금강 세종보는 4대강 16개 보 가운데 정부가 내부적으로 ‘철거 1순위’로 꼽아왔다.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고, 철거하더라도 지하수 영향이 크지 않다는 등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철거 대신 현재의 개방 상태를 유지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정부가 지난 2년간 추진해온 '4대강 재(再)자연화' '보(洑) 해체 철거' 사업이 오리무중 상황에 빠져들었다.

언제든 보를 철거할 것처럼 기세 좋게 밀어붙이더니 요즘은 "철거라는 말이 쑥 들어갔다"고 한다. "현 정권 임기 내 철거 착수조차 못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4대강 보 처리는 작년말 문재인 대통령이 "속도를 내달라"고 특별 지시까지 했던 사안이다. 대통령 지시와는 반대 상황이 벌어진 데에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

정부가 지난 2월 조달청에 의뢰한 '4대강 보 처리 방안 세부 실행 계획' 입찰이 갈 길 급한 정부 발목을 잡았다. 4대강 16개 보 처리 방안과 부작용 완화 대책 등을 세우는 25억원짜리 '마스터플랜(기본계획)' 수립 용역이다. 보 철거를 위한 첫 단계다. 그런데 이 대형 국가 프로젝트가 첫 단계부터 시장(市場)에서 완전히 외면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현 정권 임기 내 보 철거 불가능"

조달청은 최근 환경부에 "4대강 보 처리 입찰을 더 이상 추진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지난 2월 환경부로부터 의뢰를 받은 뒤 첫 입찰 공고, 3월 재공고, 4월 재재공고를 냈지만 세 번 모두 유찰되자 환경부에 반려 통보를 한 것〈그래픽〉이다. 대형 국가 프로젝트의 기본 계획을 세우는 용역이 조달 입찰 단계에서 무산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조달청 관계자는 "세 번 진행한 입찰에 공공기관이든 민간이든 응찰한 곳이 전혀 없었다. 더 이상 추진해봐야 소용 없어 환경부에 되가져 가라고 한 것"이라고 했다.

박은호 논설위원

환경부는 당혹해하고 있다. 용역을 성사시키기 위해 엔지니어링 회사와 공공 연구기관, 학회 등 용역을 수행할 수 있을 만한 기관에 "입찰에 참여해 달라"고 압력성 부탁까지 넣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시장에서 퇴짜를 맞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시기를 늦춰 다시 용역 공고를 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하지만 언제, 어떻게 사업을 추진해 나갈지 자신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마스터플랜 수립이 늦춰지면 나머지 일정도 줄줄이 연기될 수밖에 없다. 환경부는 마스터플랜 수립에 22개월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이달 중 다시 공고를 내 낙찰자가 결정돼도 2021년 3월에야 마스터플랜이 나오는 것이다. 이후에도 기획재정부의 예비 타당성 조사와 타당성 조사(6개월), 환경영향평가를 비롯한 실시 계획 수립(12개월)을 해야 한다. 그런 뒤에야 비로소 공사를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현 정부 임기(2022년 5월)가 끝난 뒤다. 정부 관계자는 "각 단계에서 걸리는 소요 기간을 최대한 단축하더라도 현 정부에서 철거 공사에 착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보 철거 참여하면 '적폐 회사' 될라"

보(洑) 철거 프로젝트가 입찰 단계에서 무산되는 상황은 아이러니하게도 현 정권이 자초한 것이다. 환경부로부터 입찰 참여 요청을 받은 A사 관계자는 "정부 요청을 거절하기도 어렵지만 이 사업을 수행했다가 나중에 어떤 후환을 당할지 걱정이 더 컸다"면서 "주요 엔지니어링 회사 오너들이 모여 '입찰에 들어가지 말자'고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조직적으로 환경부 입찰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B엔지니어링 관계자는 "간부는 물론이고 실무자들도 '보 철거는 나중에 된서리 맞을 사업'이라고 여기고 있다. 정권이 바뀐 뒤에 '적폐 회사'로 몰려 검찰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염려가 들 수밖에 없다"고 했다.이명박 정부 때 '4대강 사업 마스터플랜' 수립 용역을 맡은 한국건설기술연구원도 환경부의 요청을 받았지만 "보 철거 계획까지 세우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등 이유로 발을 뺐다고 한다.

보 철거시 지하수 영향 10배 커질 수도

정부가 부작용은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속도전'을 벌이며 보 철거를 무리하게 밀어붙인 것이 세 번이나 입찰을 무산시킨 진짜 원인이라는 말도 나온다. 정부는 올 2월 금강·영산강 5개 보 가운데 세종·공주·죽산보는 해체하고 백제·승촌보는 상시 개방하겠다고 했다. 3개 보를 유지하는 것보다 해체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제성 평가가 유리한 것은 넣고 불리한 것은 빼는 식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이 계속 드러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지하수 영향이다. 정부는 보를 철거하면 지하수 수위가 떨어져 농사에 차질이 예상되는 범위를 강 양쪽 500m씩으로 한정해서 보 철거시의 비용을 계산했다. 그러나 영산강 등 일부 지역에서는 3㎞ 넘게 떨어진 곳에서도 지하수 영향이 나타난다는 사실이 정부 용역 조사 등을 통해 이미 확인됐다고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경제성 평가에서 500m 이내로 국한해 의도적으로 비용 규모를 축소했다는 것이다. 본지가 입수한 정부 내부 자료에 따르면 세종보는 강에서 500m 이내에 지하수 관정이 161개, 공주보는 508개, 죽산보는 229개 있다. 하지만 3㎞ 이내에는 이보다 7~10배 가까이 많은 1698~3454개가 있다. 지하수 영향 범위를 3㎞ 이내로 늘려 잡으면 지하수 대책 비용이 지금보다 훨씬 커지면서 보 철거 결론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올 2월 경제성 평가가 사실상 엉터리 평가였다는 얘기다.

19개월째 열어둔 세종보 수문 잘 닫히는지 점검 요청하자… 정부 "열어둬야" 거절
장기간 개방땐 토사 들어와 고장

4대강 16개 보 가운데 정부가 내부적으로 '철거 1순위'로 꼽은 곳은 금강 세종보다. 다른 보에 비해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데다 보 주변 농경지가 없어 철거하더라도 지하수 영향이 크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이 기류가 최근 달라졌다. 민주당 출신의 이춘희 세종시장은 지난 2일 "세종보 해체 여부는 2~3년 중장기 모니터링을 한 뒤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했다. 철거보다 존치 쪽에 무게를 실은 것이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도 최근 여러 자리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누가 책임을 지나"라며 보 철거를 서두르지 않겠다고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세종보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상시 개방'이라는 현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그러나 이럴 경우에도 문제가 있다.

세종보 수문은 2017년 11월 이후 19개월째 완전 개방된 상태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수문 설비가 망가져 있을 수 있다. 개방 상태를 계속 유지하면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했다. 세종보는 다른 보와 달리 수문 각도를 90도로 세우면 수문이 닫히고, 0도로 눕히면 수문이 완전히 열리는 '전도식' 구조로 돼 있다. 이런 수문이 세종보에 100개 넘게 달려 있다. 문제는 장기간 수문 개방 상태를 유지하면서 수문 바로 아래에 놓인 기계 설비 공간에 토사가 계속 밀려 들어갔다는 점이다. 수자원공사는 최근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 뒤 "보 수문이 정상 작동하는지 알 필요가 있다"면서 현재 개방 중인 수문을 90도로 다시 닫는 방안을 검토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요청은 "수문 개방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수문 닫는 것을 반대하는 환경 단체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세종보 수문은 2012년에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해 시설 보강 공사 등을 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