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참 못생겼죠? 하하."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렸다는 송가인이 자학 개그를 했다. '실력으로 일군 우승'이란 자신감이 있기에 가능한 농담 같았다.

은행 잔액이 바닥났다. 발바닥 부르트도록 행사란 행사는 다 뛰어다녔는데 10년 차 무명 가수 수중엔 푼돈만 떨어졌다. 도돌이표 찍고 공과금, 집세, 카드 대금 결제일이 몰려왔다. 마음의 악상 기호는 데크레센도(점점 여리게)를 그렸다.

당장 먹고살아야 했다. 목[聲]으로 사는 인생이지만 손[手]으로라도 벌어야 했다. 눈 딱 감고 자존심을 접었다. 동대문시장에서 액세서리용 부자재를 샀다. 비녀, 뒤꽂이(머리 장식품)를 만들어 인터넷에 올려 팔았다. 국악 전공한 친구들의 주문이 밀려왔다. 부업으로 근근이 버텼지만 꿈만은 놓치지 않았다. 손으로 장식 붙이면서 트로트를 노동요 삼아 목을 갈고닦았다. 불과 몇 달 전 일이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던 이 깜깜한 청춘에 눈부신 스포트라이트가 켜졌다. TV조선 '내일은 미스트롯'(이하 미스트롯)에서 최종 우승한 송가인(33). 미스트롯이 몰고 온 초강력 트로트 태풍의 눈이었다. "송가인으로 시작해 송가인으로 끝났다"고 할 정도. 인터넷엔 "나이 일흔에 '덕질(좋아하는 대상에 심취하는 것)' 합니다"라는 노년 팬부터 "언니 때문에 닭 될 뻔했어요. 닭살 소름"이라며 재기 발랄 '팬심' 밝히는 어린 팬까지 '송가인 앓이' 호소하는 이가 넘친다.

"노래해서 한 달 공과금 낼 돈이라도 벌면 행복하겠다 싶었는데 이건 기적이에요."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송가인이 개나리색 재킷에 폭 파묻혀 말했다. 화면보다 작고 말랐다. 발갛게 물든 볼, 탁 트인 음성이 봄바람에 실려 일렁거렸다.

트로트 아이돌, 지역감정을 녹이다

―'중장년의 아이돌'이 됐어요. 유튜브에 과거 영상 묶음 올리는 분도 많고요.

"인스타그램에서 백발 사진을 프로필로 내건 어르신이 메시지를 잔뜩 보내셔서 깜짝 놀랐어요. 순전히 저한테 말 걸려고 손녀한테 부탁해 계정 만들었다는 70대 팬이었어요. 같이 출연한 숙행 언니랑 미용실에 갔는데 배우 김혜옥씨가 먼저 알아보시더라고요. TV에서 보던 연예인이 제 팬이라니!"

―인터넷 팬카페 회원이 5000명 가까이 되던데요.

"8년 전 인터넷 팬카페를 만들었는데 몇 달 전만 해도 140명 정도였어요. 회원이 갑자기 확 늘어 친구한테 관리를 부탁했는데 매일 밤을 새운다네요. 며칠 전엔 집주인이 제 팬이 됐다고 전화하셨어요. 조금 뒤 부동산 사장님이 연락해서 5월 말 계약 만기인데 집주인이 천천히 나가도 된다고 하셨다더라고요(웃음)."

―"전라도에서 탑 찍어 불고, 서울로 탑 찍으러 온 송가인이어라~" 하는 사투리 인사말이 트레이드마크가 됐어요.

"그거 때문에 역풍 맞게 될 줄은 몰랐어요."

―역풍이라니요?

"지역색이 강하게 드러나는 바람에 '홍어 냄새 난다' '전라도 ×' 같은 악플이 떼로 달렸어요. 지역감정이 그렇게 심한 줄 몰랐어요. 며칠 전 경남 사천에서 행사가 있어 잔뜩 긴장하고 갔는데 웬걸요. 고향에서보다 더 반응이 뜨거웠어요. '지역감정 걱정했는데 정말 감사하다'고 말하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어요. '울지 마, 울지 마' 하던 관객들이 '지역감정 없어요. 그런 거 우린 상관없어요' 하며 같이 우시고…."

―노래가 갈라진 마음을 녹였네요.

"어떤 분들은 정치인도 못 한 경상도·전라도 화합을 송가인이 해줬다고 하시더군요. 팬카페에 지역별 카테고리가 있는데 회원들끼리 '여기선 정치 얘기 하지 맙시다' 하면서 서로 배려해요."

굿당까지 팔아 뒷바라지한 엄마

―어머니 권유로 미스트롯에 나왔다고요?

"현역 가수인데 일반인하고 붙어서 떨어지면 마이너스 되지 않을까 싶어 선뜻 결정을 못 하겠더라고요. 그런데 엄마가 느낌이 좋다면서 적극 권유하셨어요." 송가인의 어머니는 무녀(巫女)이자 국가 지정 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 씻김굿 전수 교육 조교(인간문화재 전 단계)인 송순단(60)씨다.

―무녀의 딸, 어린 시절이 평범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엄마가 저를 낳고 신병에 걸리셨대요. 이유 없이 계속 아파 제가 돌 즈음에 신내림을 받으셨어요. 외할머니도 당골(무녀를 일컫는 전라도 사투리)이었어요. '무당 딸'이라 놀림도 많이 받았지만 단 한 번도 엄마를 부끄러워한 적은 없어요. 씻김굿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달래 좋은 곳으로 보내주는 일이에요. 정말 좋은 일인데 왜 부끄러워해야 하나, 천대하는 사람이 이상한 거다 생각했어요."

―어머니의 삶에 영향을 받았나요.

"관 앞에 병풍을 쳐놓고 오후 6시부터 새벽 두세 시까지 소리를 하세요. 판소리로 치면 7~8시간 완창하는 거예요. 소리꾼이 평생에 한두 번 할까 말까 하는 완창을 시도 때도 없이 해요. 엄마가 늘 '죽을 각오로 해라' 하고 말해요. 미스트롯 때도 그랬고요. 엄마가 남들 앞에서 엎드려 굿할 때 어떤 심정일까를 떠올리면 저도 이 악물게 돼요."

―노래에 재능 있는 건 언제 알았나요.

"고향이 진도예요. 강강술래, 씻김굿, 다시래기(초상집에서 유족의 슬픔을 덜어주려 벌인 장례 놀이), 들노래…. 다 진도산(産) 문화재죠. 진도 와서 소리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어요. 밭에서 일하는 할머니들이 다 명창이에요. 육자배기, 흥타령 줄줄 해요. 그런 환경에서 자랐죠. 중2 때 들노래 문화재 선생님이 제 재능을 알아봐 주셨어요." 이후 강송대 인간문화재에게 남도 민요를 배웠고, 광주예고로 진학해 박금희 명창에게 판소리를 사사했다.

―대학(중앙대)에서 국악을 전공했지요.

"엄마가 아이들(2남 1녀)에게 당신 운명이 대물림되지 않을까 두려워한 것 같아요. 저희 둘째 오빠와 제가 끼가 있었는데 씻김굿보다는 국악 쪽으로 풀리기 바라셨어요. 오빠(아쟁 연주자 조성재)와 같은 학교에서 국악을 전공했어요. 한 학기 등록금이 400만~500만원이었어요. 부모님이 허리 휘어져라 농사짓고 굿해서 뒷바라지하셨죠."

2년 전 서울 가락동의 보증금 1억원, 월 20만원짜리 빌라로 이사하는데 돈이 모자랐다. 어머니가 분신 같은 굿당을 팔아 돈을 보탰다. 우승 발표 직전 "부모님 돈을 너무 많이 가져다 써서 미안하다"는 소감은 오래 묵혀 둔 진심이었다. 우승 당일 아버지는 객석에서 벌떡 일어나 "내 딸이 최고다" 하면서 울었다. 처음 보는 아버지의 눈물이었다. 우승 상금 3000만원은 받는 즉시 엄마 통장으로 '꽂을' 예정이다.

판소리로 다진 기본

―국악 대회에서 장관상도 탔더군요. 국악을 계속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선배가 하는 국악 극단에 들어가서 어린이 국악 뮤지컬도 했고, 프리랜서로 국악 공연도 했어요. 2010년 전국노래자랑 우승을 계기로 트로트를 만났어요. 판소리 선생님이 엉뚱한 것 한다고 아까워하셨죠."

―전국노래자랑은 어떻게 나갔나요.

"엄마가 전국노래자랑이 진도에서 열린다는 공지가 뜬 걸 보고 서울로 날이면 날마다 전화해서 나가라는 거예요. 판소리, 국악 대회 나가라곤 한 번도 안 했는데. 솔직히 내키진 않았어요. 친구들 보기 창피했어요. 그런데 '감 좋은' 엄마가 그럴 땐 이유가 있겠다 싶었어요. 나갔다 덜컥 1등 했죠. 엄마도 젊은 시절 트로트 가수가 꿈이었대요."

―트로트를 배웠나요?

"아니요. 노래방에서 친구들하고 불러본 게 다였어요. 국악하고 창법이 비슷해 좋아는 했어요. 전국노래자랑 때 심사했던 박성훈 작곡가가 저를 유심히 보셨대요. '딩동댕 아저씨'로 유명하신 분이죠. 1년 뒤 연락와 도와줄 테니 앨범을 내자 했어요. 2012년 첫 앨범이 나왔어요." 이땐 본명 조은심으로 활동했다. 2017년 3집을 내면서 엄마 성 '송'에 노래 가(歌), 사람 인(人)을 합쳐 송가인이란 예명을 썼다.

―노래자랑부터 시작하면 무명 생활을 10년 정도 했네요. 설움도 많았겠어요.

"혼자 커다란 의상 가방 메고 KTX·고속버스 타고 전국 행사장에 갔어요. 칼바람 부는 겨울, 남들은 히터 나오는 차에서 대기하는데 혼자 천막에서 덜덜 떨며 대기했어요. 화장실에서 옷 갈아입고." '너무 올드하게 부른다'는 소리도 주눅 들게 했다. 자존감이 낮아져 무대 공포증까지 생겼다.

―무명을 버티게 해 준 은인도 있었을 텐데요.

"작년 6월 가요무대에 출연하게 됐을 때였어요. 인터넷으로 5만~6만원짜리 옷만 사 입었는데 압구정동 작은 의상실에 우연히 들어갔어요. 사장님께 '신인 트로트 가수니 싸게 해주실 수 없느냐'고 통사정했더니 100만원짜리 옷을 40만원에 해주셨어요. 거금 주고 맞춘 첫 무대 의상이었어요. 미스트롯 첫 무대에서 입은 그 군청색 원피스예요. 그런데 팬들 눈썰미가 어찌나 좋은지. 가요무대에서 입은 의상이란 걸 알아채곤 '의상 사 입으라'며 후원금 보내주신 분도 많아요." "고터(서울 고속버스터미널) 지하 상가 단골 액세서리 가게 사장님도 고마운 인연"이라 했다. "이름 없는 저에게 늘 '우리 인기 가수, 대스타'라 불러주셨어요. 미스트롯 나간다니 진주 목걸이까지 만들어 주셨어요."

2일 TV조선 '내일은 미스트롯' 최종 결승에서 송가인(오른쪽)이 우승자로 호명된 장면.

노래 선생님은 유튜브

―한 많은 대동강(손인호·1958), 용두산 엘레지(고봉산·1962), 단장의 미아리 고개(이해연·1956)…. 트로트 중에서도 옛 노래를 많이 불렀어요.

"1930~60년대 노래가 저랑 맞았어요. 예전 정통 트로트의 굴리거나 꺾는 창법이 판소리와 비슷해요. 제 노래 듣고 촌스러운 삼류 음악이라 생각했던 트로트가 품격 있는 음악이란 걸 알게 됐다는 반응이 무척 감동적이었어요."

―연습은 어떻게 하나요.

"제 선생님은 유튜브예요. 주로 주현미 선생님이 부른 옛 노래를 유튜브로 틀어놓고 따라 해요. '한 많은 대동강'도 원곡이 아니라 주현미 버전으로 연습했어요. 어떤 곡에 꽂히면 완벽하게 마스터할 때까지, 속이 메스꺼워질 때까지 그 곡만 수천 번 들어요."

―1986년생 동갑내기 여자 가수를 찾아보니 '보아'가 있더군요. 트로트가 또래에게 인기 장르는 아닌데 외롭지 않은가요?

"오히려 남들이 안 하는 걸 하는 쾌감이 있어요. 젊은 사람이라 아이돌 노래 할 줄 알았는데 옛날 트로트를 하니 반전 매력이 있는 거 아닐까요. 저는 배호, 이미자 선생님은 아는데 요즘 인기 있는 아이돌은 거의 몰라요. 친구들하고 '배그(배틀그라운드·인터넷 게임)'를 하는데 한 친구 아이디가 '아미'더라고요. 현철 노래 '아미새'에서 왔나 했더니 친구가 막 웃었어요. BTS 팬클럽 이름도 모르느냐면서."

―게임을 좋아하나요?

"미스트롯 전엔 친구들하고 밤 11시부터 새벽 5시까지 했어요. 판소리 같이한 친구들인데 헤드폰 쓰고 창 하면서 게임해요. '나는 죽었응께. 잘 가거라~' 이런 식." '용두산 엘레지'와 '배그' 사이. '트로트 밀레니얼 세대'의 아찔한 활강이다.

송가인이 노래할 때 하는 특유의 손동작을 취했다. 판소리를 하며 익힌 '발림(감정을 표현하는 몸짓)'이 자연스럽게 손동작으로 나온다고 했다.

트로트는 내 운명

―또래한테 사랑받고 싶진 않나요.

"판소리 할 때부터 주 관객이 어르신이라 그분들이 편해요. 중2 때 돌아가신 친할머니 생각도 나고요. 돌아가시기 전까지 6개월 정도 매일 할머니 저녁밥을 차려드렸어요. 일으켜 세워 요강에 앉혀 드리고, 틀니도 닦아 드렸어요."

―홍자씨와 기 싸움이 있었죠? 일대일 대결에서 졌다가 패자부활전으로 올라가자 팬들이 설정이라고 성화가 대단했어요.

"제작진의 설정인지 아닌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다만 내 실력을 충분히 발휘했기에 떨어져도 미련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판정단한테는 졌지만 시청자들은 알아주시겠지 하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래도 홍자 언니가 '삑사리'는 냈지만 감정을 정말 잘 살렸어요. 표 차이가 3:8까지 난 건 속상하고 서운했지만요(웃음)."

―경쟁이 과열되면서 악플도 많던데요.

"'아줌마 같다' '눈에서 살기가 느껴진다' '뚱뚱하다'는 외모 비하 댓글에 상처받았어요. 사실 내내 노래 실력보다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렸어요. 예전부터 연예인 하기 힘든 얼굴이란 얘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미스트롯 나오기 전 성형외과 가서 상담도 받았어요. 수술이라도 해서 얼굴 살을 걷어내야 하나 싶어서요. 그런데 작가분들이 복스럽다며 극구 말려서 그냥 나왔어요(웃음)." 그는 "미스트롯이 '노래를 잘해야 가수'라는, 당연하나 그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진리를 확인시켜줘 고맙다"고 했다.

―'한 많은 대동강아~'('한 많은 대동강' 첫 소절)로 열어서 '한 많은 미아리 고개~'('단장의 미아리 고개' 마지막 소절)로 닫았어요. 수미상관 한(恨)이네요.

"살면서 힘든 적도 많았지만 더 힘든 사람들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노래를 해요. 한이 바탕에 깔린 판소리를 해서 그런지 트로트도 한이 서린 곡이 더 맞고요." 특유의 마무리 손동작은 판소리의 '발림(손·발·온몸을 움직여 감정을 표현하는 몸짓)'에서 왔다고 했다.

―방송에서 가요 '티어스'를 불러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어요. 다른 장르도 잘할 것 같은데 트로트를 고수할 건가요?

"트로트는 제 운명이에요. 가슴에서 찡한 뭔가가 나오는 음악이 좋아요. 판소리 할 때 자동으로 '얼씨구' 추임새 나오듯 트로트에서 '탁' 목 돌려 꺾을 때 터져 나오는 탄성이 있어요. 한국 트로트의 요 맛으로 세계에서 탑 찍어불랑께요~."

인터뷰를 마친 뒤 메시지를 확인하던 송가인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 멤버 '동해' 어머니가 팬이라며 꼭 한번 통화하고 싶어 한다고 지인이 보낸 메시지였다. '아이돌 엄마'의 아이돌, 송가인이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