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궁기(春窮期)를 맞아 '식량난'을 호소한 북한이 지난달 일부 국제기구의 현지 실사를 받아들인 것으로 2일 알려졌다. 정부는 "현 단계에서 당국 차원의 식량 지원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면서도 국제기구 조사 결과를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당장은 아니지만 북이 연내에 꽤 심각한 식량난을 겪을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WFP) 등은 지난달 북한의 식량 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방북했다. 이달 안에 조사 결과와 지원 여부를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 김성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대사가 식량난을 호소하며 국제기구에 식량 140만t 긴급 원조를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외무성에 "국제기구에 우리 식량 사정이 어렵다는 것을 호소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국정원이 지난 3월 국회 정보위에 보고한 바 있다. 북한이 스스로 식량난을 '인정'하고 외부에 공개적으로 도움을 요청한 건 이례적이다.

국제사회가 파악한 지난해 북한의 식량 생산량은 495만t이다. 2017년(545만t)에 비해 약 9% 줄었다. 최근 10년 동안 북한의 식량 생산량이 500만t 밑으로 떨어진 건 처음이다. 이상 고온, 폭우 등 자연재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권태진 GS&J 인스티튜트 북한·동북아연구원장은 "식용(약 365만t), 비축량(50만t), 자연 손실량(70만~80만t), 종자 및 사료(30만~40만t)를 합하면 550만t 정도의 식량 확보가 돼야 한다"며 "아직 대량 아사(餓死) 발생까진 아니지만 굉장히 힘들 것"이라고 했다.

선 채로 생맥주 마시는 평양 주민들 - 북한 주민들이 지난 23일 평양 보통강변에 있는 ‘만수교 청량음료점’에서 선 채로 생맥주를 마시고 있다. 테이블 위에 맥주잔들이 가득하다. 최근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시로 유엔 등 국제사회에 식량난을 호소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식량난의 원인을 대북 제재에서 찾는다. 생산량 자체는 '고난의 행군' 때만큼 나쁘지 않지만 외화 수입이나 식료품 반입 등이 막히며 식량 조달이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김인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최근 계속된 작황 악화, 대북 제재로 인한 외화 부족 등의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해 식량 부족 현상이 나타났다"고 했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대북 제재로 중국에서 들여오던 식료품량이 크게 줄자 주민들의 불안감이 커져 식량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다만 식량난에도 아직 장마당 쌀 가격엔 큰 변화가 없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북한이 '제재 때문에 인민 삶이 망가진다'는 논리를 강화하기 위해 식량난을 호소했을 수 있다"고 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정부 차원의 식량 지원엔 선을 그으면서도 "정부는 북한 주민의 인도적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인도적 지원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교착에 빠진 미·북, 남북 대화의 돌파구로 '식량 지원' 카드가 검토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행정부도 북의 식량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비핵화에 소극적인 북한에 대한 협상 지렛대로 식량 지원 카드를 쓰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