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일 청와대에서 열린 사회 원로 간담회에서 적폐 청산, 여야 관계, 한·일 관계, 소득 주도 성장 등 논쟁적 사안들에 대해 당분간 노선 수정이 없을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이날 간담회는 오는 10일 대통령 취임 2주년을 맞아 원로들의 제언을 듣기 위해 마련됐지만, 결과적으로 문 대통령이 국정 운영 기조를 바꿀 생각이 없다는 점만 확인된 셈이다.

◇노선 수정은 없다

문 대통령은 '적폐 청산'이 정치·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킨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빨리 진상 규명과 청산이 이뤄진 다음 그 성찰 위에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가자는 데 공감이 있으면 얼마든지 협치, 타협도 할 수 있다"며 "국정 농단과 사법 농단 자체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니까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정치·사회적 갈등이 있더라도 '적폐 청산'은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그 부분에 대해선 타협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검찰의 '정치 수사' 논란에 대해선 "수사는 정부가 통제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 언급이란 지적이 법조계에서 나왔다. 문 대통령은 지난 3월 18일 '장자연·김학의·버닝썬' 사건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 또 전 정권 인사들이 연루된 방산 비리 수사와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 기무사계엄 문건에 대한 수사 등도 이어져 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청와대에서 열린 사회 원로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원로들은 이날 문 대통령에게 정치 대립, ‘코드’·‘낙하산’ 인사, 소득 주도 성장 기조 등 현안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왼쪽부터 조은 동국대 명예교수, 이종찬 우당장학회 이사장, 이홍구 전 국무총리,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안병욱 한국학중앙연구원장, 김연명 사회수석,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김지형 전 대법관. 문 대통령 오른쪽으로 김우식 전 부총리, 김영란 전 대법관.

문 대통령은 "가장 힘든 것은 정치권의 대립과 갈등이 격렬하고 그에 따라 지지 국민 사이에서도 적대감이 갈수록 높아지는 현상"이라며 "정치라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절감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대야(對野) 관계에 대해선 '여당과 청와대가 할 만큼 했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과거 어느 정부보다 야당 대표들을 자주 만났고 여야정 국정 상설협의체도 만들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최근 국빈 방문한 칠레의 경우를 들며 "칠레 대표단 속 의원들은 전부 다 야당 의원들"이라며 "정치 대립이 많지만, 외교, 경제 등에 있어 칠레는 초당적 협력이 이뤄진다는 칠레 대통령 말이 참 부러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 관계 등을 언급하면서 "그 부분도 공고화되지 않았다"며 '종북 좌파' 이야기를 꺼냈다. 문 대통령은 "종북 좌파라는 말이 어느 개인에 대한 위협적 말이 되지 않고 생각이 다른 정파에 대해 위협적 프레임이 되지 않는 세상만 돼도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될 것"이라고 했다. 지난 3·1절 기념사에서 '빨갱이'를 '친일(親日) 잔재'로 규정하며 "지금도 정치적 경쟁 세력을 비방하고 공격하는 도구로 빨갱이란 말이 사용되고 있다"고 말한 것의 연장 선상으로 풀이된다.

3·1절 기념사에서 한 발 더 나간 문 대통령은 그러나 북한을 추종하는 '종북(從北)'까지 국가가 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명확히 구분을 하지 않았다. '색깔론'은 안 된다는 것과 헌법 질서에 반하는 종북까지 인정할 것인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청와대 관계자는 "진보·보수의 구분이 의미가 없어졌는데 아직도 과거의 틀에 갇혀서는 안 된다는 뜻"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등 소득 주도 성장 문제를 언급하며 "우리 사회 정책 전반이 거대한 갈등으로 뭉쳐 있다"며 "이런 부분을 해결하자면 더 큰 틀의 사회적인 대화, 그리고 그것을 통한 사회적인 합의, 이것이 반드시 필요한데 아직 활성화 안 돼 있다"고 했다. 정책의 변화보다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현 정책 노선을 유지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탈원전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野 "문 대통령 말, 이해가 안 돼"

야권에선 "남의 얘기를 들을 생각이 없는데 원로들은 왜 만났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왔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적폐 수사 지시를 하면서 협치는 안 하겠다는 말이라면 아주 유감스럽다"며 "정치적인 '국정 농단 몰이'가 없지 않았다"고 했다.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 정부가 2년 내내 적폐 청산을 외쳤고, 대통령과 여권이 하는 말은 사실상 '보수 궤멸'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했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최고위원은 "나라가 살기 위해서는 외부의 적폐가 아니라 이제 현 정권 내부의 적폐를 청산해야 할 때인데 그런 반성은 전혀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