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네 살 아들을 키우는 엄마이자 워킹맘이랍니다. 우유회사에 다니며 어른들과 아이들이 다 같이 먹을 수 있는 맛 좋고 영양 많은 제품을 개발하는 게 제 일이지요. 아이 키우며 느낀 일을 숫자와 그래프로 말하라면 척척 할 것 같은데 여러분께 말과 글로 전하려니 조금 떨려요.

저는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공부한 뒤 2012년 11월 매일유업에 들어왔어요. 같은 회사에 다니는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2016년 7월 아들 도윤이를 만났습니다.

당시 저는 아기를 위한 조제 분유를 개발하고 있었어요. 육아가 얼마나 엄청난 '미션'인지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육아를 겁내긴커녕, '아이를 직접 키워보면 업무에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초보 엄마였지요.

지난 4월 최지혜(맨 왼쪽) 연구원이 시부모님, 남편, 아들 도윤이와 함께 집 근처 공원을 찾았다. 최 연구원은 “시부모님 덕분에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게 가능했다”고 말했다.

출산 후 2주간 산후조리원에서 지내고 아이와 함께 현관문을 연 순간부터 현실 육아가 시작됐어요. 초보엄마는 아이가 울면 어떻게 달래야 할지, 배가 고픈지, 어디가 아픈지 알 수 없어 항상 안절부절못하였죠. 제가 연구해서 만든 분유인데도 아이가 울면 분유 때문인가 싶기도 했어요. 일하면서 수없이 타던 분유인데 아이가 새벽에 배가 고파 울면 허둥지둥 분유를 타다 쏟기도 했죠.

그래도 아이는 무럭무럭 성장하며 잘 자라줬어요. 저는 1년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게 됐습니다. 흔쾌히 아이를 돌봐주겠다고 나서주신 시부모님이 아니었다면, 회사로 가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시부모님께서는 며느리를 열심히 응원해주셨어요. 저희 집은 지하철과 멀어서 저는 주로 차를 타고 출근합니다. 하루는 남편이 아침 일찍 차를 가지고 나가 제가 타고 갈 차가 없어졌어요. 택시를 불러도 오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는데, 시부모님이 마치 친정부모님처럼 살갑게 도와주셨어요. '잠시 기다렸다 내려오라'는 시어머니 말씀을 듣고, 5분 후 내려갔더니 시어머니가 제가 춥지 않도록 차를 따뜻하게 데워놓으셨더군요. 시어머니가 저를 데려다 주시는 동안 시아버지께서 아이를 봐주셨고요.

그 무렵 저는 아이 분유팀에서 성인 영양식 개발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어요.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근육량이 줄어들어 단백질 섭취가 중요한데, 중장년층은 식사만으로는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하기 힘들답니다. 어른을 위한 건강식을 만들기 위해 여러 교수님과 전문가를 만나뵀어요. 그러면서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시부모님의 모습이 그제야 이해가 갔지요.

소화기능이 떨어졌다며 식사를 많이 못 하시던 모습, 조금만 걸어도 다리에 힘이 빠져 오래 못 걷겠다고 하시던 말씀…. 제가 '우리 아기 할아버지·할머니가 드실 제품'을 만들고 있구나 실감했지요.

저는 여러 가지 시제품을 만들어 시부모님께 맛보여 드렸어요. 시부모님이 "이건 맛없다" "이건 너무 달다"고 피드백을 주셨지요. 드시면서 불편한 점을 온종일 생각했다가 제가 퇴근하면 귀띔해주셨고요.

일하는 며느리 때문에 두 분이 마음 편히 여행 한번 못 가시는 게 죄송했는데, 제품 얘기 나누면서 사이가 더 가까워진 걸 감사하게 여기고 있어요. 시부모님께서도 전에는 막연하게 며느리가 식품회사에 다닌다고만 생각했는데, "네가 이런 일을 하는구나" 하며 뿌듯해하셨습니다. 시부모님이 도와주신 덕분에, 제가 개발한 어른을 위한 근육 건강식이 지난해 10월 무사히 시장에 나왔답니다.

아들은 이제 어린이집 4세반에 등록해 늠름한 모습으로 등원하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부모님의 도움 없이는 저 혼자 절대로 못 해냈을 일이 너무 많아요. 요즘도 저희 시부모님은 "우리 며느리가 만든 건데 한번 잡숴보시라"고 주위에 열심히 홍보하신답니다.

평소엔 쑥스러워 잘 표현 못 하는 며느리지만, 오늘만큼은 저도 시부모님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