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공소장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언급된 부분을 대부분 삭제한 것으로 28일 알려졌다. 법원이 최근 '(담당) 판사에게 예단을 줄 수 있거나 불필요한 내용'이라며 공소장 34군데를 삭제하거나 고치라고 권고한 데 따른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검찰이 위법한 공소장을 썼다는 걸 인정한 것"이라며 "공소 기각(검찰 패소) 판결을 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재판부에 유죄 심증을 주지 않도록 공소장에는 범죄 혐의와 직접 관련 있는 내용만 간략히 담아야 한다는 공소장 일본주의 원칙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검찰이 지난 2월 양 전 대법원장을 기소하면서 쓴 공소장은 296쪽이었다. 이례적으로 긴 분량이다. 검찰은 공소장에 이 사건의 '배경 설명'을 자세히 적었다. 양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벌어졌다는 이른바 '재판 거래' 의혹 등의 배후에 박 전 대통령과 당시 청와대가 있다는 것이었다. 검찰은 일제 강제징용 사건이 2013년 대법원에 재상고됐다가 5년 넘게 선고가 이뤄지지 않은 것도 박 전 대통령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는 취지로 공소장을 썼다.

그런데 검찰은 지난 10일 이를 포함해 공소장에서 박 전 대통령이 언급된 부분을 거의 다 뺀 것으로 알려졌다. 한 변호사는 "이 사건은 전직 대법원장 등 최고위 판사들의 직권 남용이 있었는지를 가리는 것"이라며 "박 전 대통령까지 거론하는 건 국정 농단을 둘러싼 부정적 여론을 이 사건으로 끌어오려는 의도라는 평가가 많았다"고 했다.

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 측은 "검찰이 공소장 일본주의를 위반했기 때문에 재판을 더 할 것도 없이 재판부가 공소 기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검찰 관계자는 "재판부가 본격적인 재판에 들어가기 전에 지엽적인 문제들을 정리하자는 차원"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30일 재판에서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