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트 산정 기간이 끝나갑니다. 방탄소년단 신곡이 발매 첫 주 빌보드 차트 10위 안에 진입하는 게 중요합니다. '아미(Army·방탄소년단 팬클럽 이름)'들 다운로드는 기본이고, 잊지 말고 스트리밍(실시간 재생)도 열심히 돌려주세요."

지난 19일(미국 현지 시각) 몇 개의 트위터 계정에 이런 영어 글이 올라왔다. 모두 'btschart'라는 단어로 시작하고 끝에 미국, 영국, 브라질 등 각 나라 이름이 붙어있는 계정이었다. 이 글은 한국의 7인조 보이그룹 '방탄소년단'이 최근 발매한 새 앨범 타이틀곡 '작은 것들을 위한 시(부제: Boy With Luv)'가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 '핫100'에서 10위 안에 들기 위해 팬들에게 노력해달라는 당부였다. 여기에 사진이 첨부된 댓글이 수천~수만 건 달렸다. 사진은 모두 스포티파이, 판도라 등 유명 디지털 음원 서비스에서 방탄소년단의 곡을 다운로드하거나 수십~수백 회씩 재생했다는 '인증샷'이었다. 같은 날 또 다른 트위터 계정 'BTSX50States'는 미국 50주의 각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 방탄소년단의 곡을 신청해달라는 독려는 물론, 전화로 신청하는 방법 등을 정리한 매뉴얼을 공유하고 있었다. 빌보드 차트는 음원 다운로드 및 재생 횟수뿐 아니라 라디오 신청 횟수도 순위 산정에 반영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독려 글을 올리는 계정은 모두 미국의 방탄소년단 팬들이 운영한다. 지난 23일 이런 미국 팬들의 정성(?)이 방탄소년단의 신곡을 빌보드 '핫100' 8위로 밀어 올렸다. 한국 가수로서는 싸이 '강남스타일' 2위에 이어 역대 최고기록이다.

일러스트= 안병현

한류가 팬클럽 문화까지 수출한다

방탄소년단의 이런 대기록은 미국 '아미'가 한국의 아이돌가수 팬클럽이 만들고 발전시킨 문화를 그대로 흡수하고 실천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10~20대 여성이 주축인 한국 아이돌 가수 팬클럽은 본인이 응원하는 가수가 신보를 내면 통칭 '총공(총공격을 줄인 말)'을 개시한다. '우리 오빠 1등 만들기 작전' 돌입이다. 음악 차트 산정 방식을 파악해 그에 최적화된 순위 올리기 방법을 만들어 팬클럽끼리 공유할 뿐 아니라, 매크로 프로그램을 동원해 실시간 검색어 1위 만들기나 각종 시상식 투표에 몰표를 던지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방탄소년단의 해외 팬클럽도 정확히 같은 '총공'을 실천하고 있고,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작년 초에 미국 '아미'의 이정표 같은 순간이 있었다. 방탄소년단이 신보를 냈을 때 트위터에 'BTSX50States' 계정이 생기고, 미국 전역의 라디오에 방탄소년단 노래 신청하기 캠페인이 시작된 것이다. 이 계정은 미국 전역의 주요 라디오 방송국 목록을 정리하고 방송국별로 어떤 프로그램에 어떤 방법으로 노래를 신청해야 하는지 세세하게 정리했다. 지역별로 라디오에 노래 신청하는 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 각종 돌발 상황에 대한 대비 매뉴얼까지 만들어 배포했다. 예를 들어 전화로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신청했는데, DJ가 방탄소년단을 모르거나, 방송국이 방탄소년단의 CD를 갖고 있지 않은 경우 방탄소년단을 소개하는 멘트와 그들의 음악을 빠른 시간 안에 디지털 음원 사이트나 유튜브 등에서 찾아서 라디오에서 틀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는 응대법까지 정리되어 있는 식이다.

해외 '아미'는 이제 빌보드 차트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큰 디지털 음원 사이트인 '스포티파이' 차트까지 공략하고 있다. 작년 방탄소년단이 'Fake Love'로 빌보드 차트 10위까지 올랐지만 스포티파이 차트에서는 100위권 밖으로 순위가 저조했다. 스포티파이는 전 세계 이용자가 2억명이 넘기 때문에 빌보드보다 더 공신력 있게 대접받기도 한다. 일부 외신은 스포티파이의 낮은 순위를 근거로 '방탄소년단이 미국에서 대세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올해 방탄소년단이 컴백하기 전 해외 아미들은 스포티파이의 차트 산정 방식이 담긴 기사와 스트리밍 목록을 미리 만들어 '대비'했다. 게다가 유료 회원의 재생 횟수가 차트에 더 많이 반영되는 점을 노려, 각 지역 팬클럽이 성금을 모아 돈이 없는 다른 팬들에게 유료 계정을 지원하는 캠페인까지 벌였다. 미국 뉴욕주에 사는 애나 리(17)양은 "학교의 '아미'들이 돈을 걷어서 방탄 팬이 아닌 친구들에게 스포티파이 유료 계정 가입비를 대신 내주면서 방탄소년단 노래를 재생해 달라고 부탁하는 일도 벌였다"며 "어차피 방탄소년단이 컴백한 후 한 달만 열심히 재생하면 되기 때문에 그 뒤에는 탈퇴하는 식으로 치고 빠지는 게 기본"이라고 말했다. 방탄소년단의 신곡은 차트 3위에 올랐다.

미국의 권위 있는 시상식 투표도 아미의 '공격' 대상 중 하나다. 지난 24일 오전 트위터 실시간 검색어 1위에 'BBMAsTopSocial'이란 단어가 올라왔다. 이날 빌보드뮤직어워드의 톱소셜아티스트상 후보들이 공개되고 팬투표가 시작됐기 때문이었다. 팬들이 화제 몰이 하려고 이 단어에 해시태그를 달아 투표 독려 글을 올렸고, 단 하루 만에 이 해시태그를 단 글이 500만건 이상 올라왔다.

방탄소년단의 새 앨범 발매 기자회견을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온 팬클럽 회원들.

팬들이 맘만 먹으면 차트 조작도 가능

지난 16일 '핫100'과 함께 빌보드의 양대 차트인 '빌보드 200'에 방탄소년단의 신보가 1위에 오르자 한국 소셜미디어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은 온·오프라인 판매량을 집계해 순위를 매기는데, 스트리밍보다는 다운로드와 실물 CD 판매량에 더 가중치를 둔다. 대개 발매 첫 주 20만~25만장 정도 팔리면 빌보드 1위를 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정설인데, 방탄소년단의 이번 신보는 선주문량이 268만장이었고, 그중 해외 주문도 상당했다. 이런 팬클럽의 '화력' 덕분에 작년부터 신보 발매 때마다 '빌보드 200' 1위를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런 식의 차트 1위 만들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다. 이론적으로 얼마든지 순위 조작이 가능하며 실제 조작 가능성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의 한 엔터테인먼트사 대표는 "방탄소년단뿐 아니라 엑소, 트와이스 등 정상급 아이돌이나 몬스터엑스같이 해외 팬덤이 큰 팀이라면 아마존에 20만장을 주문하는 '화력' 행사는 충분히 가능한 규모"라고 말했다. 실제로 작년 중국 가수 크리스 우의 팬클럽이 그의 생일 기념으로 인터넷 주소(IP) 우회를 통해 미국 아이튠스 스토어에서 음원을 무더기로 구매했다. CD로 치면 수십만 장 규모라서 '빌보드 200' 1위에 오르고도 남을 만한 수치였지만, 빌보드는 크리스 우의 순위를 100위로 강등했다. 조작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크리스 우는 SM엔터테인먼트의 대표 보이그룹 '엑소'의 중국인 멤버로 데뷔했지만, 일방적으로 전속 계약을 파기하고 중국에 돌아가 가수로 활동 중인 인물이다. 이 때문에 미국에선 그의 팬클럽이 한국의 아이돌 팬클럽 문화를 너무 노골적으로 베껴 거칠게 일을 벌이다 사달이 난 것 아니냔 지적도 나왔다.

미국에도 아이돌 가수나 열성팬들은 있지만, 이름을 가진 조직을 만들고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일사불란하게 활동하는 '총공' 문화는 아직 드물다. 외신이나 미국 대중음악 업계에서는 이런 한국 팬클럽 문화가 미국에 수입되는 걸 새로운 현상으로 바라보면서도 이런 활동에 의해 방탄소년단 등 한국 가수들의 차트 성적이 부풀려질 수 있다는 의혹을 거두지 않고 있다. 아이돌 음악 전문 웹진 '아이돌로지'의 편집장 미묘씨는 "K팝은 단순히 음악이 아니라 그 음악을 제작·향유하는 방식까지 아우르는 한 문화이기에 팬클럽 문화까지 해외에서 받아들이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한국 팬들의 '총공' 문화의 부정적 측면 같은 것도 해외 팬들이 배울 수 있다는 문제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총공·빌보드 핫 100·빌보드 200

총공은 총공격의 줄임말로 아이돌 가수 팬클럽이 벌이는 일종의 온라인 홍보 활동을 총칭한다. 디지털 음원 서비스에 여러 개의 차명 계정을 만들어 24시간 실시간 재생을 돌려 차트 순위를 높이거나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실시간 검색 순위 1위를 만드는 일도 불사한다. 해외 아미의 총공 대상 1호는 미국 빌보드의 양대 차트인 '핫 100'과 '빌보드 200'이다. 핫 100은 노래 인기 순위 차트로 100위까지 게시되고, 빌보드 200은 앨범 판매량 차트다. 그중 '핫 100'은 빌보드에서 가장 중요하고 그만큼 오르기 어려운 차트로, 한국 가수 중엔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세운 2위가 최고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