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미세 먼지 대책 등을 이유로 6조7000억원 규모의 추경 예산을 편성해 지출하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본예산이 아직 40% 정도밖에 집행되지 않았는데 3조6000억원 빚까지 내가며 또 세금을 쓰겠다는 것이다. 국가재정법은 추경 편성 요건을 대규모 재해, 대량 실업 등 '중대 변화가 발생한 경우'로 규정하고 있다. 이번 추경이 여기에 해당되는지부터 의문이다. 법 규정까지 무시하면서 '3년 연속 추경'을 강행했다. 경제수석을 지낸 소득주도성장특위 위원장은 "정부 곳간을 활짝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 말이 현실이 됐다.

미세 먼지 대책을 이유로 시작했지만, 정작 미세 먼지 관련 예산은 22%에 불과하다. 1조5000억원을 노후 경유차 엔진 교체 등에 투입해 미세 먼지 발생량을 연 7000t 더 줄이겠다고 한다. 그만한 효과가 나올지도 의문이지만 그래 봐야 전체 미세 먼지 발생량의 2.5%에 불과하다. 지하철 무료 정책을 내놨다가 사흘 만에 150억원만 날린 서울시의 실패가 되풀이될 공산이 크다. 10년, 20년 단위의 장기 종합계획을 세워 추진해야 할 미세 먼지 대책을 급조된 추경으로 대응한다는 발상 자체가 졸속에 다름 아니다.

정부도 '미세 먼지'만으론 명분이 약하다고 보았는지 '선제적 경기 대응'을 또 다른 이유로 내걸었다. 지역 SOC 건설이나 벤처·창업 지원 등 경기 부양 용도로 예산을 쓰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가 말해온 경제 낙관론과 앞뒤가 맞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가 견실한 흐름"이라고 했고, 경제부총리는 보름 전에도 "고용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경기 하강 위험'이 커졌기 때문에 추경을 한다며 말을 바꿨다. 이번 추경 예산의 절반은 취약 계층 현금 지원과 공공 일자리 사업에 쓰인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또 선심성 현금을 뿌리고 관제(官製) 아르바이트를 급조하겠다는 것이다.

이 정부 들어 잘못된 정책 실패의 뒷감당을 세금으로 때우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소득 주도 성장 정책으로 최악의 고용난을 자초하고, 이를 만회하려 2년간 54조원의 일자리 예산을 퍼부었지만 일자리는 늘리지 못하고 돈만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최저임금 급속 인상으로 자영업을 무너트려 놓고는 소상공인 지원 등에 2000억원을 쓰겠다고 이번 추경에 반영했다. 사용자 외면으로 조롱거리가 된 '제로(0) 페이' 인프라 확충에도 76억원을 투입하겠다고 한다. 어린이집 등의 공기청정기 보급 사업은 작년 추경에도 248억원이 편성돼 48억원이 남았는데도 올 추경에 또 309억원을 넣었다. 세금 아까운 줄 모르는 포퓰리즘 정부의 세금 중독증이 심각한 수준까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