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의 최근 인터뷰에 대해 "멍청해 보인다"고 말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일 보도했다. 이틀 전 권정근 외무성 미국 담당 국장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저질적인 인간"으로 묘사한 데 이어 특정인을 콕 집어 원색 비난한 것이다. 하노이 회담 결렬 책임을 미국에 떠넘기며 차후 있을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북한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존 볼턴(왼쪽 사진)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대해 "멍청해 보인다"고 비판했다. 사진은 볼턴 보좌관이 지난달 5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안경을 고쳐 쓰고 있는 모습. 북한은 앞서 마이크 폼페이오(오른쪽 사진) 미 국무장관에게도 "저질적인 인간"이라고 했다.

최선희가 겨냥한 건 볼턴 보좌관의 17일 블룸버그통신 인터뷰 내용이다. 당시 볼턴 보좌관은 "(3차 미·북 정상회담에 앞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려는 전략적 결정을 했다는 진정한 징후를 보고 싶다"며 "우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빅딜'에 대해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최선희는 "그래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라면 두 수뇌(정상)분들 사이에 제3차 수뇌 회담과 관련하여 어떤 취지의 대화가 오가는지 정도는 파악하고 말을 해도 해야 할 것"이라며 "앞으로 계속 그런 식으로 사리 분별 없이 말하면 당신네한테 좋은 일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볼턴 보좌관이 언제 한번 이성적인 발언을 하리라고 기대한 바는 없다"며 그에 대한 불신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북한은 1차 미·북 정상회담 직전인 작년 5월에도 미 고위 인사를 연쇄 비판했다. 당시 외무성 제1 부상이던 김계관은 볼턴 보좌관을 향해 '인간쓰레기' '흡혈귀와 같은 자'라 했고 최선희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을 향해 '아둔한 얼뜨기'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이유로 미·북 정상회담 취소를 발표하자 북한은 "최근 벌어진 불미스러운 사태는 (미·북) 관계 개선을 위한 수뇌 상봉이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가를 그대로 보여준다"며 꼬리를 내렸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이번 북한의 비판은 작년 5월과 비슷하지만, 개인적 비난은 최대한 자제하고 트럼프 대통령과 맺은 관계는 강조하고 있다"며 "전술적 차원에서 비판은 했지만 '판을 깰 수는 없다'는 북한의 다급한 속내가 드러났다"고 했다.

북한 전문가들은 "앞으로 미·북 대화 구도를 유의미한 실무 협상 없이 김정은과 트럼프 대통령 간의 '정상 담판'으로 몰아가려는 의도"라고 풀이했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협상 구도를 유리하게 바꾸기 위한 '기 싸움' 차원으로 보인다"며 "협상 결렬 책임을 상대에게 돌리며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어보려는 의도"라고 했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사실상 미국의 '대북 강경파' 배제를 대화 재개 조건으로 내건 셈"이라며 "내부적으론 외교 진용이 재편된 만큼 김정은에 대한 충성 경쟁 차원에서 강경한 언사를 쏟아내는 것"이라고 했다.

한편 북한 노동신문은 21일 '위대한 당을 따라 총진격 앞으로'라는 제목의 정론에서 "오늘의 정세는 우리로 하여금 1956년의 그 나날을 돌이켜보게 한다"고 했다. 김일성이 동구권 순방 중 북한 내부 쿠데타 징후를 전해 듣고 조기 귀국한 1956년 상황과 김정은의 '하노이 빈손 회담'을 유사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대북 소식통은 "당시 김일성은 중국과 소련이 쿠데타 세력을 배후 지원했다는 의심 아래 '자력갱생' 노선을 선포하고 '천리마 운동'을 시작했다"며 "북한의 몹시 어려운 국면 중 하나였던 1956년까지 언급한 건 그만큼 현 시국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