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火魔)가 할퀴고 간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종소리는 잠시 멎었지만, 이를 계기로 프랑스 전역에서 연대와 통합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7일(현지 시각) 오후 6시 50분 동쪽의 스트라스부르부터 서쪽의 루앙까지 사르트르 대성당과 사크레쾨르 대성당, 스트라스부르 대성당 등 프랑스 전역의 성당 100여 곳에서 장엄한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발생 48시간에 맞춰 연대와 위로의 의미로 일제히 타종(打鐘)한 것이다.

프랑스는 지난해부터 진행되고 있는 '노란 조끼' 반(反)정부 시위로 극심한 분열과 내부 갈등을 겪고 있다. 빈부 격차, 종교 문제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856년간 나라의 심장과 같던 노트르담 대성당에 참화(慘禍)가 터졌다.

첨탑 보수 공사를 위해 세워뒀던 철골 구조물은 곳곳이 휘어졌고, 첨탑이 서 있던 부분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화마가 쓸고 간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을 17일(현지 시각) 공중에서 찍은 모습이다(왼쪽 사진). 이날 프랑스 전역의 100여 성당은 노트르담 화재 발생 48시간에 맞춰 연대와 위로의 의미로 타종(打鐘)했다. 파리 생 쉴피스 성당 앞에 모인 시민들이 연대의 종소리를 듣고 있다(오른쪽 사진).

국가적 재난 앞에서 프랑스 국민은 단합했다. 파리 시민 수백명이 17일까지 이틀간 대성당 인근에 모여 촛불을 켜고 철야 기도를 했다. 일부는 성가를 부르며 생 쉴피스 성당부터 노트르담 대성당이 보이는 생 미셸 광장까지 1㎞가량 행진했다. 대성당 인근 곳곳에는 시민들이 가져온 그림이 놓였다.

일간 르피가로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 운동을 보도했다. 리옹의 한 삽화가는 노트르담 대성당을 그린 엽서를 6.5유로에 판매해 얻은 수익금을 쾌척하겠다고 나섰다. 앙티브의 레스토랑은 주말 매상 전액을, 알랑송 빵집은 빵 경매금을 대성당에 기부하겠다고 했다. 코르드 쉬르 시엘이란 마을은 대성당 관련 오르간 콘서트를 준비 중이고, 한 석공 장인은 대성당 복구를 위해 젊은이들을 무료 교육하는 재능 기부를 하겠다고 했다. 종교를 떠나 프랑스 내 무슬림 교단에서도 기부가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 국내외 모금액은 화재 이틀 만에 10억유로(약 1조2800억원)를 돌파했다. 프랑스 거부(巨富)들의 기부 행렬에 이어 미 애플·디즈니 등 세계적 기업들도 동참했다.

일간 르몽드는 "노트르담 앞에서 프랑스 국민은 정체성과 단합을 다시 확인했다"고 보도했고, 프랑스 출신 언론인 마리옹 반 핸테르겜은 영국 가디언 기고에서 "프랑스는 분열된 나라였지만, 노트르담은 우리를 하나로 만들 것"이라고 했다. 작가 장 세비야는 "노트르담 화재는 '모든 분야가 연결돼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우리의 뿌리는 죽지 않는다"고 했다.

긴박한 위기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국민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그는 화재 직후, 예정됐던 대국민 담화를 바로 취소하고 현장으로 달려가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마크롱은 자정 무렵 "노트르담은 우리의 역사, 우리의 문학, 우리의 상상이자 우리의 가장 위대한 순간을 살아왔던 곳"이라며 단합을 호소했다. 프랑스 정부는 18일 국민을 위해 대성당 앞에 임시 성당을 세우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프랑스는 대규모 시위가 잦고 사회 갈등도 심한 편이지만, 큰 위기와 재난 앞에서는 항상 단결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5년 1월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Charlie Hebdo)의 편집국에 이슬람 극단주의자 3명이 침입해 편집장 등 12명을 살해한 테러에 프랑스 국민은 희생자를 추모하고 테러를 규탄하는 '나도 샤를리다' 운동을 벌였다. 테러 나흘 만에 프랑스 전역에서 370만명이 '반(反)테러 대행진'을 하기도 했다.

같은 해 11월 일어난 이슬람국가(IS)의 '파리 연쇄 테러' 때도 그랬다. 당시 파리 도심의 공연장·경기장·레스토랑 등 6곳에서 연쇄적으로 총기 난사가 벌어져 130명이 희생됐다. 최악의 참사 속에서도 프랑스 국민은 파리의 용기를 상징하는 격언인 '흔들릴지언정 가라앉지 않는다'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었고, 프랑스 정치권은 프랑수아 올랑드 당시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나로 뭉쳐 테러 집단에 대응했다.

2016년 7월에는 프랑스 남부 휴양지인 니스에서 트럭 테러가 일어나 86명이 숨졌다. 그때도 테러 현장에서 참사를 막으려고 했던 평범한 시민들의 이야기가 프랑스 국민을 단합시켰다. 테러 현장에는 한동안 추모의 의미가 담긴 수백 개의 촛불이 켜졌다.

마크롱 대통령은 16일 TV 연설에서 "우리는 국가적 재난 극복을 위해 행동하고 단합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이번에 재확인했다"며 "노트르담 화재는 우리의 역사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고, 언제나 시련을 극복할 것임을 일깨워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