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 글지기 대표

뭐 드릴까요. 차림표 좀 주실래요. 그런 건 없는데요. …. 그게 아니고, 메뉴 좀. 아, 예~. 오래전 어느 생맥주 집에서 주고받은 말이다. 못 알아듣는 게 떠름했던 그때와 달리, 이제는 차림표라 하면 생뚱맞아 보이기까지 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길지만 뉴스 한 토막 들여다보자.

"친북 성향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는 후보자인데 이런 것들 다 검증하고 제청한 것입니까?"(국회의원) "이낙연 총리는 정부에서 1차로 점검한 사항이라며 방어에 나섰습니다."(기자) "그런 문제도 스크린이 됐습니다."(총리)

귀로 받아들이는 특성을 신경 썼는지 방송은 '스크린(screen)' 대신 '점검'으로 바꿔 표현했지만, 신문은 아랑곳없다. '청와대는 최근 2차 개각 때도 (…) 관련 의혹을 모두 스크린했다는 설명을 내놨었다.' 청와대 사람이 그랬다손 쳐도 '알아봤다/ 확인했다/ 점검했다' 하면 되지 않는가. 그대로 옮기지 않으면 거짓 뉴스라고 으르렁댈까 봐?

뒤에 열린 인사 청문회에서는 이런 말이 들렸다. "정신 상태가 노멀(normal)하지 않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정상(正常)'을 팽개친 사람은 국회의원이고, 그 말 들은 사람 장관 됐다. 정부·국회·언론… 지도층이 이런 사회, 정상이라 할 수 있을까.

'내로남불'이 시쳇말이 된 걸 보라.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 어감이 좋아야 할 것은 들온말(외래어) '로맨스'로, 나쁜 것은 우리말 '불륜'으로 표현한다. 거꾸로 '내가 하면 순애(純愛), 남이 하면 스캔들'이랄 수도, 그도 아니면 '자연타불(自戀他不·자기가 하면 연애, 남이 하면 불륜)' 할 수도 있을 텐데.

나이브(순진한) 모멘텀(동력) 설루션(해법) 어젠다(의제) 카운터파트(상대) 캡처(갈무리) 패스트트랙(신속 처리제)…. 신문은 영어 참 좋아한다. 까닭 없이 써댄다고, 못 알아듣겠다고 독자들이 그렇게 나무라건만. 우리말에도 독자한테도 예의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