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작가

예술의 역사 왜곡은 고질병이다. 복사기처럼 역사를 재현했다가는 상상력 빈곤이라는 비판에 시달려야 하니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해도 너무 한다 싶은 수준의 역사 왜곡에는 할 말을 잃게 된다. 문학에서는 단연 뒤마의 ‘삼총사’다. 정의로운 네 명의 사내들이 악질 추기경 리슐리외에 맞서 왕을 보필하고 왕비를 지킨다는 내용인데, 다 거짓말이다. 네 명의 칼잡이들은 몰려다니며 민폐나 끼치고 툭하면 법으로 금지된 결투를 벌이는 무법자였고 왕비는 친정인 스페인의 간첩이었다. 그럼 악당으로 나오는 리슐리외는? 그는 오스트리아와 합스부르크 왕가라는 외부의 위협과 신교도 세력이라는 내부의 적으로부터 프랑스를 지킨 애국자였다. 구교와 신교가 죽기 살기로 맞붙었던 독일 30년 전쟁에서 신교 편을 들었던 것도 리슐리외다. 그 자신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지만 국익을 위해 잠시 종교를 잊었다. 세간의 평가는 다르지 않겠느냐고 물으실지 모르겠다. 리슐리외의 사저였던 파리의 ‘팔레 루아얄(Palais Royal)’에 가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주변 건물 중 리슐리외라는 이름이 들어간 가게가 여럿이다. 존경받지 못하는 이름을 옥호로 내걸었을 리 없다.

일러스트=박상훈

형틀에 묶인 남자가 '프리덤~' 외치며 장렬하게 죽어가는 영화 '브레이브하트'의 역사 왜곡도 '역대급'이다. 13세기 스코틀랜드의 영웅 윌리엄 월리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데 그가 실존 인물이라는 것과 형장에서 끔찍하게 죽은 사실 빼고는 죄다 허구여서 이 영화 보고 영국사(史) 시험을 치렀다간 100% 낙제다. 일단 그런 소리를 질렀을 리가 없는 게 그가 벌인 싸움이 전제군주 대 자유인의 항쟁이 아니라 잉글랜드 왕과 스코틀랜드 귀족들 사이의 암투였기 때문이다. 윌리엄 월리스는 영화와 달리 농노가 아닌 귀족이었고 아내를 잃은 외로운 독신남이 아니라 아이까지 있는 유부남이었다. 윌리엄 월리스를 사랑하는, 잉글랜드로 시집온 프랑스 공주 이사벨라의 이야기도 연대가 맞지 않는다. 이사벨라는 윌리엄 월리스가 처형될 당시 겨우 열 살이었고 그가 죽은 후 4년이 지나 잉글랜드로 시집을 왔다. 주인공에 대한 미화는 적의 비하로 이어진다. 영화 속 악당은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다. 비열하고 냉혹한 이미지의 에드워드 1세는 첫 등장부터 관객들의 미움을 산다. 스코틀랜드인의 종자 개량을 위해 프리마 녹테(초야권)의 부활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지방 영주가 신부의 첫날밤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는 초야권은 역사적 근거도, 기록도 없는 중세 전설이다. 만약 그런 게 진짜 있었다면 대부분의 영주는 과다하게 권리를 행사하다가 과로사로 생을 마쳤을 것이다. 190㎝에 달하는 큰 키 덕분에 '롱생크'라는 별칭으로 불린 에드워드 1세는 영화 속 설정과는 달리 법제도 개혁으로 명군(名君)소리를 들었던 사람이다. 법만 잘 만든 게 아니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의 국력 차이는 초등학생과 대학생 수준이었는데 그의 치세 중 영국은 거의 대등한 수준으로 프랑스를 따라잡았다. 물론 적에 대해서는 가혹했지만 그건 현대를 기준으로 해서나 그렇다는 얘기고 오히려 중세 사람치고는 인정머리가 넘쳐 죄 없는 민간인은 건드리지 않으려 조심했던 왕이었다.

윌리엄 월리스의 처형은 교수형, 거열형, 장기 적출형, 참수형의 통합 버전으로 반역자 전용이다. 영화에는 형을 집행하기 전 난쟁이들이 처형을 우스꽝스럽게 흉내 내는 장면이 나온다. 사람을 형틀에 눕혀 놓고 상의를 풀어 밧줄을 끄집어내는데 관객들은 나중에야 그게 무엇의 은유인지 알고 기겁을 한다. 전근대의 신체형이 그토록 잔인했던 것은 당시 사람들이 특별히 모질고 악랄해서가 아니다. 국왕 이체론(二體論)은 왕의 신체를 둘로 구분한다. 하나는 병들고 죽는 자연적 신체이고 다른 하나는 왕권의 영속성과 정통성을 담고 있는 정치적 신체다. 반역죄는 왕의 자연적 신체가 아니라 정치적 신체를 침범한 행위다. 그래서 그 형벌 역시 죄인의 자연적 신체가 아닌 정치적 신체가 목표였다. 몸이 아닌 정신을 파괴하기 위해 필요 이상의 폭력을 동원하여 죄를 인정하고 자비를 간구하게 만드는 것이다. 영화는 개봉과 동시에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잉글랜드에서는 상영 금지 요구가 있었지만 영화는 제작비의 두 배에 달하는 1억400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역사적 사실이 영화적 재미에 압사당한 것이다. 영화가 역사를 대체하는 시대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공산주의자 김원봉이 나온 영화 ‘암살’이 흥행했으니 유공자로 지정해도 된다는 설명은 나가도 너무 나갔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상식마저 설 자리를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