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훈(63) 대통령 경호처장이 부하 직원을 가사 도우미로 썼다는 의혹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경호처가 소속 직원들을 상대로 휴대전화 통화 내역과 문자메시지 기록을 제출받아 본격적인 제보자 색출 작업에 나선 것으로 16일 나타났다.

최근 경호처는 전체 490여명 직원 가운데 150명 이상에게 '휴대전화 통화 내역을 제출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제보자 색출 작업은 경호처 내 감찰 부서가 주도하고 있다. 경호처 관계자는 "감찰 과정에서 '통화 내역 등을 제출하지 않으면 외부 유출자로 용의 선상에 올리겠다' '제출 안 한 사람은 총을 안 채우겠다(경호 업무에서 배제하겠다는 의미)'는 언급도 했다"고 말했다. 경호처는 직원들이 입사할 때 '내부 정보 유출에 따라 휴대전화 통화 내역 등을 조사할 수 있다'는 내용의 보안서약서에 서명했으니 통화 내역을 제출받아 감찰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영훈 대통령 경호처장이 16일 성남 서울공항에 착륙한 대통령 헬리콥터에서 내리고 있다. 주 처장은 이날 중앙아시아 순방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을 수행해 이 헬기를 타고 청와대에서 공항까지 이동했다.

앞서 지난 8일 경호처 시설관리팀 소속 무기계약직 여성 직원이 주 처장의 관사(官舍)로 출근해 가사 도우미 일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9일에는 주 처장이 경호처 인사 관행상 5~6급인 대통령 운전기사를 3급으로 '특혜 임용'하고, 이를 반대하는 경호처 간부를 좌천시켰다는 의혹 보도가 나왔다. 당시 경호처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런데 부인한 의혹에 대해 뒤늦게 내부 직원들을 상대로 통신 내역 조사까지 하는 것은 과도한 감찰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경호처가 진행한 휴대전화 감찰의 주요 표적이 된 부서는 경호본부라고 한다. 150여명이 넘는 조사 대상자 대부분이 경호본부 소속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호본부는 대통령 곁에서 근접 경호를 맡는다. 여기에 조직·정원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일부 팀과 시설 관리 담당자들도 통화 내역을 제출했다고 한다.

경호처는 주영훈 처장이 무기계약직 직원을 관사로 출근시켜 가사 도우미 업무를 시켰다는 의혹에 대해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문제가 없다'고 발표한 이후, 내부 감찰 작업을 더 서두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민정수석실은 해당 직원이 주 처장 관사로 매일 출근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도 "해당 직원이 가사 업무는 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해당 직원은 지난달 말 본지 통화에서 "주 처장의 관사에 출근한 것이 맞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후 통화에서는 "관사에 몇 차례 출입해 집안일을 도와준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이후 통화에서 A씨는 "거기(관사 1층) 회의실도 있고 하니까 필요할 때 (오가며) 도와주고 했을 뿐"이라고 했다. 청와대가 '해당 직원이 관사 1층에서 공적 업무만 봤다'고 해명하자 '주 처장 관사에 출근해 일했다'고 했던 A씨가 기존 입장을 바꾼 것이다. 전직 경호처 관계자는 "관행을 핑계로 직원에게 사실상 관사 가사 업무를 맡겨왔다고 들었다"며 "이번 정부 들어서도 이를 용인해왔고 논란이 되자 성급히 '문제가 안 된다'는 식으로 해명하고 있다"고 했다.

해당 직원의 업무는 원래 경호원 체력단련 시설인 '연무관' 청소였다. 경호처가 홈페이지에 주 처장 명의로 올린 채용 공고에도 무기계약직 직원들은 경호처 구내식당 조리, 조경·수목 관리 업무, 청사 환경 정비 등 공적 업무만 하게 돼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경호처장 관사 관리를 전담해 왔다는 게 경호처 안팎의 얘기다. 청와대 내부에선 "민정수석실이 '면죄부'를 주자마자 경호처가 내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취재원'을 찾겠다며 전방위 감찰을 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경호처의 집중 감찰이 시작되자 지난주부터 청와대 인근 통신사 지점들에는 통화 내역을 뽑으려는 경호처 직원들이 한꺼번에 몰려 업무가 마비되기도 했다. 경호처 직원들은 작년 10월부터 올해 4월까지 통신 기록을 받아 갔다고 한다. 휴대폰 가입자가 조회를 요청하면 최대 7개월치 통화, 문자 메시지 송신 기록을 받을 수 있다. 상대방의 전화번호, 통화 시각 등이 담겨 있다. 다만 문자 메시지 내용 자체는 나오지 않는다. 경호처 직원들은 개인용 휴대전화 외에도 업무용 법인 휴대전화를 가진 경우가 많다. 통신업체 관계자는 "지점에 찾아온 일부 경호처 직원들은 '이런 거 왜 하는 건지 모르겠다' '시간도 없는데 다른 통신사에도 다녀와야 한다'고 푸념했다"고 전했다.

지난 13일에는 경호처 내부에 '비상 소집령'도 내려졌다. 경호처는 이날 휴가 중이거나 전날 당직 근무로 비번이었던 경호본부 직원들까지 전부 사무실로 소집해 '보안 교육'을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호처 관계자는 "경호본부는 최고 엘리트인 수행 요원들이 모여 있는 부서인데, 조직에서 대놓고 의심의 눈초리를 받으니 사기 저하가 말이 아니다"라고 했다.

대대적인 보안 조사가 이뤄지면서 경호처 직원들 사이에서는 카카오톡 등 단체 대화방 탈출 현상도 나타났다고 한다. 한 경호처 관계자는 "동창, 친구 등과의 일반적인 외부 연락도 눈치가 보일 정도로 분위기가 안 좋다"며 "공산주의 국가 경호기관도 이렇게는 안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