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이 12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과 관련,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한미 간 전혀 접점을 찾지 못한 ‘워싱턴 노딜’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도 "문재인 대통령이 주장해온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재개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노(no)’한 것"이라며 "어두운 결과"라고 했다.

작년 4월 12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남북정상회담 원로자문단 오찬 간담회에 초청한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왼쪽),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가운데) 등과 대화하고 있다.

정 전 장관과 박 의원은 김대중 정부 때 각각 통일부장관과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대표적인 대북 포용론자다. 두 사람 모두 작년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환영 만찬에 참석했고 문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원로 자문단으로 활동했다. 그런 만큼 문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충분히 좋은 거래)’로 불리는 단계적 비핵화 방안으로 미국을 설득하기는커녕 미국의 대북 강경 입장만 확인하고 왔다는 실망감과 함께 한국 정부의 전략적 한계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정 전 장관은 이날 오전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후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의 설명을 보니 외교적인 수사로 가득해 이번에 별로 성과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평가가) 박한 게 아니라 그게 현실"이라고도 했다. 정 실장은 이번 정상회담에 대해 "허심탄회한 논의가 있었다"고 했다. 외교에서 '허심탄회한 논의를 했다'는 수사(修辭)는 보통 입장 차이를 확인했을 때 쓰는 표현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통일부장관을 지낸 정 전 장관은 "우리는 미·북 3차 정상회담을 빠른 시일 내에 재개시키기 위해 미국이 내놓은 빅딜안과 북한이 요구하는 제재 완화 연결시키려고 '굿 이너프 딜'이라는 것을 설정해갔다"며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회담은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단계를 밟아서 가자고 했다. 이 말 뜻은 (3차 미·북 정상회담을) 빨리는 안 하겠다는 의미"라고 했다.

정 전 장관은 "조금 기대를 걸 수 있는 대목은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북한의 의사를 빨리 확인해서 알려달라고 한 부분인데, 북쪽에 전달할 어떤 메시지를 줬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메시지의) 내용이 무엇일지 짐작하긴 어렵지만,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메시지를 줬다면) 북한에 특사를 보낼 수 있을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쥐어준 메시지의 내용이 5월쯤 남북 정상회담 개최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평화당 박지원 의원도 이날 불교방송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우려했던 대로 (한·미 정상이) 좋은 합의는 못한 것 같다"며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구태여 성과라고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하거나 혹은 북한을 접촉해서 미국에 알려달라고 하는 것 정도"라고 했다.

박 의원은 특히 "문 대통령은 '굿 이너프 딜', '스몰딜' 해서 함께 경제제재 완화하자 (한 것인데), 이것을 트럼프 대통령은 '빅딜' 비핵화를 해야 된다(고 하고), 문 대통령이 금강산(관광)이나 개성공단을 재개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노(no)', 즉 '비핵화의 진전 상태를 보고 하겠다'고 해서 (문 대통령이) 참 어두운 결과를 가지고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