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지속 여부 숙고할 시간 주어져야"
"모자보건법, 낙태갈등 상황 포함 못해"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낙태죄 처벌조항에 대한 위헌소원 사건 선고가 열리고 있다.

11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처벌조항이 위헌이라고 본 것은 ‘임신 초기에 한정해서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결정이다. 태아의 발달 단계나 독자적 생존능력과 무관하게 낙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것이다.

헌재는 이날 낙태죄 처벌 조항에 대한 위헌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4명(헌법불합치) 대 3명(단순위헌) 대 2명(합헌)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심판 대상은 형법 269조 1항(자기낙태죄)와 270조 1항(의사낙태죄)였다. 헌재는 우선 자기낙태죄를 집중적으로 심리했다. 헌재는 "모자보건법이 정한 일정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임신기간 전체를 통틀어 모든 낙태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있다"며 "이를 위반할 경우 형벌을 부과하도록 정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헌재는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낙태를 금지하고 형사처벌하는 것 자체가 모든 경우에 헌법에 위반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일정한 시기를 기준점으로 삼아 그 이전에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낙태를 허용하되, 이후에는 태아의 생명권을 보장하기 위해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헌재는 '임신 여성의 마지막 생리기간의 첫날부터 기산해 22주(이하 임신 22주)'를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했다. 산부인과학계에서는 이 시기가 지나면 태아의 독자생존이 가능하다고 본다. 헌재는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생존이 가능한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와 비교할 때 훨씬 인간에 근접한 상태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헌재는 "자기결정권이 보장되려면 임신한 여성이 임신·출산 여부에 관해 전인적 결정을 하고, 그 결정을 실행함에 있어 충분한 시간이 확보돼야 한다"고 했다. 여성이 임신 사실을 인지하고, 자신을 둘러싼 사회·경제적 상황을 파악한 뒤 주변의 상담과 조언을 얻어 숙고할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모자보건법상 낙태 허용 사유가 극히 제한적인 것도 이 같은 판단의 근거가 됐다. 모자보건법은 △유전병·전염병이 있는 경우 △강간에 의한 임신일경우 △임신 상태가 이어지는 게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에만 낙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헌재는 "모자보건법상 정당화 사유에는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갈등 상황이 전혀 포함되지 않는다"고 했다. 학업이나 직장생활, 부족한 소득, 추가 자녀를 감당할 수 없는 경우, 결혼 계획이 없는 경우 등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낙태를 허용하지 않으면 임신 유지로 인한 신체·심리적 부담과 고통 등을 여성이 감내하도록 강제하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헌재는 판단했다.

한편 이석태·이은애·김기영 재판관은 '마지막 생리기간의 첫날부터 임신 14주 무렵'까지인 '임신 제1삼분기’에는 여성이 자신의 숙고와 판단 하에 낙태를 무조건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들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려면 임신의 유지나 종결에 관해 전인격적인 결정으로 자기결정권의 행사가 임신기간 전체에 걸쳐 보장돼야 한다"고 했다. 다만 태아의 생명 보호, 여성의 생명 및 신체의 안전 등을 위해 일부 제한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이들은 그러면서 "자기낙태죄 조항으로 기소되는 사례가 매우 드물었고, 형벌조항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들 조항이 폐기된다고 하더라도 극심한 법적 혼란이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