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산불 피해를 입은 강원도 고성군과 속초·강릉·동해시, 인제군이 어제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됐다. 1800채가 넘는 주택·시설물 피해와 여의도 면적 두 배 가까운 530만㎡ 산림이 불타고, 돌아갈 집이 없어 임시 주거 시설에 머무는 주민들이 아직도 700명이 넘는다고 한다. 대형 산불로 인한 특별재난지역 선포는 2000년 동해안 산불, 2005년 양양 산불 이후 세 번째다. 그만큼 피해가 컸다. 피해 지역 주민들이 하루빨리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도록 복구 지원이 차질 없이 진행돼야 한다.

산불은 꺼졌지만 재난 상황에 대한 지상파 3사의 늑장 보도는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지난 4일 밤 10시 산림청이 '산불 재난 국가 위기 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했을 때도 지상파들은 드라마와 예능·시사 프로그램을 계속 방영했다고 한다. 그 이전에 이미 화마(火魔)가 초속 25m 넘는 강풍을 타고 급속히 번지면서 피해가 속출한 상태였다. 고성군 마을이 불타고, 주민들이 고립되고, 수학여행 온 관광버스에서 불이 나 학생들이 대피하고, 연기를 마신 주민이 구급차에 실려가고, 사망자까지 발생한 상태였다. 상황이 이런데도 지상파들은 한가하게 정규 프로그램을 틀고 있었다니 믿기지 않는다.

특히 KBS는 재난 주관 방송사 타이틀을 반납해야 할 정도다. KBS 재난 특보 체제는 화재 발생 4시간이 넘은 밤 11시 25분이 돼서야 비로소 가동됐다. 뉴스 전문 채널은 물론 MBC보다도 더 늦었다. KBS는 밤 10시 55분부터 특보 뉴스를 내보내긴 했지만 그나마 10분도 안 돼 중단하고 정규 프로그램인 '오늘 밤 김제동'을 20분간 틀었다고 한다. 국민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산불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선거 분석 같은 내용을 방송한 것이다.

KBS가 국가 기간 방송이 맞는지 의심스러운 사례는 이뿐 아니다. 2017년 9월 북한의 6차 핵실험 뉴스를 외신이 긴급 타전하는 동안 KBS는 당시 방송 중이던 '전국노래자랑'을 끝까지 틀며 자막 뉴스로만 취급했다. 국민이 이런 방송에 세금과 같은 시청료를 왜 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