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 연구소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4월 경제상황 진단에서 "대내외 수요가 위축되면서 경기가 점차 부진해지고 있다"는 판단을 내놓았다. 작년 11월부터 5개월 연속 '경기 둔화'라고 표현했던 것에서 경고 수위를 한 단계 높였다. 4년 만에 처음으로 '경기 부진'이란 표현을 쓰면서 경기 하강세가 본격화될 것이란 진단을 공식화한 것이다. 온갖 악재에도 여전히 경제 낙관론을 견지하고 있는 청와대와 정부를 향해 KDI가 경고 사이렌을 울렸다.

KDI는 경기 흐름을 지탱하는 생산·투자·소비·수출 등의 각종 지표들이 예외 없이 모두 부진하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지난 2월 생산은 전달 대비 1.9%, 설비투자는 10.4%, 소매 판매액은 0.5% 하락하는 이른바 '트리플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1월 실업률은 19년 만의 최악이고, 경기 상황을 말해주는 경기동행·선행지수는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9개월 연속 동반 하락했다. 그나마 버텨주던 수출마저 반도체·석유화학 등 대부분 주력 품목이 부진에 빠지면서 4개월째 마이너스 행진 중이다. 내수와 수출이 동시에 부진한 내우외환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지금도 일선 기업과 서민 경제 현장에선 힘들다고 아우성인데 더 심각한 경기 침체가 닥쳐오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 몇 년간 세계 경제가 호황을 구가하는 동안 한국 경제는 제대로 된 경기 상승세를 맛보지 못했다. 그리고 글로벌 호황이 끝날 조짐을 보이자 한국이 가장 먼저 경기 하강기에 접어들고 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정부의 정책 실패가 상황을 악화시킨 데에 큰 '역할'을 했다. 최저임금을 급속하게 올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경기를 무너트리고 일자리를 사라지게 했다. 무리한 주 52시간 근무제로 기업 부담을 늘리고 경제 활력을 떨어트렸다. 경쟁국과 거꾸로 가는 일련의 반기업 정책들은 기업 심리를 위축시키고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기존 산업은 퇴조하는데 미래 신산업은 낡은 규제에 묶여 갈수록 뒤처지고 있다. 산업이 성장하지 못하고 시장이 활기를 잃는데 경기가 살아날 수는 없다. 잘못 설계된 정부 정책이 온갖 부작용을 드러내며 경기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정책 전환만이 경기 침체를 막을 수 있는데도 청와대와 정부는 바꾸지 않겠다고 한다. 지난주 문재인 대통령은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이 "세계적으로 족보 있는 이야기"라며 고수 입장을 재확인했다. "경제가 개선된 모습을 보이고 견실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는 황당한 인식을 보이기도 했다. 경제 운용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는 지난달까지도 "경기에 긍정적 모멘텀이 있다"고 현실과 동떨어진 진단을 유지했다. 모든 지표, 모든 통계가 경기 악화를 말해주고 있는데 정부만 보려 하지 않는다. 객관적 사실과 지표 대신 이념과 정치의 잣대로 경제를 들여다보고 있다. 경기 하강이 본격화해 서민 경제가 무너지고 민생 현장에서 아우성이 터져 나오면 더 이상 핑계도 통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