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에게 정치적 면죄부를 준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 수사 결과를 들고 야권과 언론에 '총공격' 모드로 전환했다. 반면 트럼프 정권을 꺾을 반전 카드로 특검 결과에 올인하다시피 했던 민주당은 향후 정치적 입지와 전략이 완전히 헝클어졌다. 워싱턴포스트 등은 "워싱턴 정치권의 판이 완전히 뒤집혔다"고 했다. 법무부는 지난 24일(현지 시각) 특검 수사 결과를 트럼프 대통령의 2016년 대선 당시 러시아와의 공모에 대해선 무혐의, 그리고 수사 기관에 부당한 외압을 행사했다는 사법 방해죄에 대해선 판단을 유보하는 것으로 요약해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특검 발표와 관련한 백악관 기자들의 질문에 "매우 매우 사악한 일, 매우 매우 나쁜 일을 한 사람들이 저 밖에 있다. 우리나라에 대한 '반역적(treasonous) 행동'이라고 말하고 싶다"면서 "그들은 사악한 일을 너무 많이 저질렀다. 우리나라에 그런 해를 끼친 사람들은 분명히 수사받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초 러시아 공모 의혹 수사에 착수했던 연방수사국(FBI) 내 일부 집단이나, 특검 수사를 촉구했던 민주당과 진보 진영에 대한 보복성 '역(逆)특검'을 추진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도 NBC방송에 출연해 "민주당과 진보 언론은 대통령을 '외국 정부의 요원'이라고 불렀다. 이건 사형까지 가능한 반역죄(treason)에 맞먹는 혐의다"라고 말했다.

당장 트럼프의 최측근인 공화당의 린지 그레이엄 상원 법사위원장은 민주당과 힐러리 클린턴 전 후보 등을 겨냥한 '제2의 특검'을 직접적으로 주장하고 나섰다. 지난 주말 내내 트럼프 대통령과 플로리다에서 골프를 치며 '대책회의'를 한 그레이엄은 25일 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러시아 스캔들 수사가 시작된 '근원'에 대한 특검이 필요하다"며 "윌리엄 바 법무장관에게 이 수수께끼를 풀 또 다른 특별검사를 임명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2016년 당시 오바마 정권하의 법무부와 FBI가 트럼프 후보를 저지하려는 다양한 수단을 동원했다는 의혹이 있는데, 뮬러 특검에 상응하는 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는 '러시아 스캔들' 의혹의 출발점인 '트럼프 X파일' 조작 의혹부터 파헤치겠다는 얘기로 해석됐다. X파일은 2013년 당시 모스크바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참석한 트럼프가 성접대를 받은 동영상 등 각종 러시아 커넥션 추문(Russian dirt)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와 FBI는 이 X파일을 근거로 영장을 받아 공화당 전국위원회에 대한 감청을 벌이며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시작했다.

문제는 이 파일이 작성된 과정이다. 파일은 '퓨전GPS'라는 사설 정보업체의 의뢰를 받아 영국 비밀정보국(MI6) 요원 출신 크리스토퍼 스틸이 작성했다. 그런데 퓨전GPS는 민주당전국위원회(DNC)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공화당 의원들에 따르면 DNC는 퓨전GPS와 정보 용역 계약을 맺고 1300만달러(약 140억원)를 제공했다. 만일 이를 특검으로 파헤친다면 미 정계를 전방위로 초토화하는 초대형 스캔들로 번질 수도 있다.

뮬러 특검 결과를 토대로 대통령 탄핵을 추진하거나 적어도 차기 대선 정국에서 '반(反)트럼프' 전선 구축의 발판으로 삼으려던 민주당은 향후 전략 궤도를 대폭 수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일단 민주당은 25일 트럼프의 구체적 비위 단서를 찾을지도 모른다는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이번 주 내 보고서 전체 공개를 요구했다. 이를 법무부가 거부하면 위헌 소송 등 기나긴 법리 싸움으로 가야 한다. 민주당 소속 제리 내들러 하원 법사위원장은 특검이 판단을 유보한 대통령의 사법 방해 혐의에 대해 윌리엄 바 법무 장관이 '혐의 없음'으로 결론 낸 것을 문제 삼아 바 장관을 청문회에 세우겠다고도 했다.

민주당 안팎에선 이번 사태의 충격에서 빨리 털고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폴리티코는 "특검은 어차피 국민의 일차적 관심사가 아니었다"면서 "뮬러 보고서는 민주당이 러시아 스캔들을 둘러싼 정쟁에서 벗어나 트럼프의 경제·복지 정책 등 실질적 문제에 관심을 돌릴 전환점을 마련해 줬다. 내년 대선을 (민생 경쟁이라는) 정공법으로 승부할 기회를 준 이번 '선물'을 받아들일지는 민주당에 달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