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7 국가 첫 일대일로 참여...중국, 동유럽 잇는 트리에스테항·북서부 제노바항 투자 길 열려

이탈리아가 중국의 확장 정책에 대한 서방의 우려에도 시진핑(習近平)중국 국가주석이 주도해온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프로젝트 참여를 공식화했다. 올해 첫 해외 순방국가로 이탈리아를 찾은 시 주석은 유럽 선진국에서의 지정학적 영향력 확보 댓가로 에너지 철강 토목 금융 농산물 등 30여건의 계약을 통해 3조 2000억원에 달하는 ‘경제 선물’을 안겼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23일(현지 시각) 로마에서 이탈리아를 국빈 방문 중인 시진핑 주석을 만나 일대일로 양해각서(MOU) 서명식을 개최했다. 구속력이 없는 조약이지만 중국은 주요 7개국(G7)에 속한 선진국이자 유럽연합(EU)창설 멤버를 일대일로에 끌어 들이는 성과를 올렸다.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는 중국이 유럽연합(EU)으로부터도 '경제적 경쟁자'이자 '체제 경쟁의 라이벌'로 규정되기 시작한 가운데 이탈리아를 ‘우군’으로 확보한 셈이다.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한 옛 실크로드를 새로운 경제 무역 통로로 부활시키겠다는 일대일로는 2013년 시 주석의 제창으로 시작됐으며 1조달러가 투입된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 정부는 6년간 한국 등 123개국가 및 29개 국제조직이 일대일로 협력 문건에 서명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동남아 아프리카 유럽의 비주류 국가 들의 참여가 대부분이었고 서방 선진국에서는 중국의 지정학적 군사적 영향력 확보 채널, 부채 함정 등이라는 비판의 시선으로 대해왔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장기적인 경제 침체를 겪고 있는 이탈리아는 중국과의 무역을 활성화하고, 중국으로부터의 투자를 촉진함으로써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시진핑에게 ‘일대일로 참여’라는 레드 카펫을 깔아줬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올해 첫 해외 순방국으로 찾은 이탈리아에서 22일 세르지오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과 의장대를 사열하고, 정상회담을 가졌다. 시 주석 방문 기간 일대일로 협력 등 19건의 정부간 협약이 체결됐다.

로마 도심 외곽에 위치한 호화로운 르네상스 시대의 저택 '빌라 마다마'에서 이날 열린 일대일로 MOU 등 30여건의 계약식에는 루이지 디 마이오 부총리 겸 노동산업장관, 중국 쪽에서는 허리펑(何立峰)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 등이 서명자로 나섰다. 이날 체결된 협력사업 총 규모는 25억유로(약 3조 2000억원)에 달했다.

일례로 이탈리아 국유은행인 CDP는 중국은행(BOC)과 손잡고 50억위안(약 8350억원)규모의 판다본드(외국 기관이 중국내 투자자를 상대로 발행하는 채권)를 발행하기로 했다. 이탈리아 가스회사 스냄은 중국의 실크로드펀드와 중국 및 일대일로 참여국가에서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저장시설 바이오메탄 공장 등에 투자할 때 협력하는 문건에 서명했다.

디 마이오 부총리는 서명식 후 기자회견에서 "오늘 서명한 계약의 미래의 잠재적인 가치는 200억 유로(약 25조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이어 "오늘은 이탈리아에 매우 중요한 날로, '메이드 인 이탈리아'로 통칭되는 이탈리아 상품과 이탈리아 회사, 이탈리아 전체가 승리한 날"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이탈리아는 독일이나 프랑스보다 중국에 덜 수출하고 있다"며 "단지 따라 잡으려 하는 것 뿐으로 지난해 176억유로(약 22조 5280억원)에 달한 중국에 대한 무역적자를 빠른 시일내에 해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확장 정책에 이탈리아가 '트로이 목마'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는 동맹국의 우려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우방과 굳건한 협력을 유지한다는 게 우리의 방침이지만, 교역 관계에 있어서는 '이탈리아 우선'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답변했다.

21일부터 23일까지 진행된 시 주석의 국빈방문 기간 서명된 정부간 협력문건만 19건에 이른다. 양국은 특히 공동성명을 통해 일대일로를 EU의 유럽⋅아시아 소통 전략과 연계하는 것을 지지하고 항구 물류 해운 분야의 협력을 심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중국은 시 주석의 방문으로 동유럽을 잇는 요충지인 이탈리아 북동부 트리에스테항과 북서부 제노바항의 투자와 개발에 참여할 길을 확보했다. 공동성명에 따르면 양국은 또 수교 50주년이 되는 내년을 상호 문화 관광의 해로 지정하기로 했다. 중국이 주도해 설립한 국제 금융기구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를 통한 협력도 강화하기로 했다.

공동성명은 또 어떤 형식의 보호주의도 반대하고 무역과 투자자유화 편리화를 촉진하고 세계무역기구(WTO)의 핵심지위를 수호하며 필요한 WTO 개혁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고 적시했다. 중국은 물론 유럽을 상대로 통상 공세를 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를 겨냥한 것이다.

이날 서명식에는 현재 이탈리아 정치인 중에서 가장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이탈리아 포퓰리즘 연립정부의 실세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겸 내무장관은 불참해 일대일로를 둘러싼 이탈리아 정부 내부의 분열상을 드러냈다.

극우 성향의 정당 '동맹'을 이끌며 강경 난민 정책에 앞장서고 있는 그는 전날 대통령궁에서 시 주석을 위해 베푼 국빈 만찬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살비니 부총리는 이날은 북부 체르놉비오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시진핑 주석의 방문, 동등한 조건에서 시장을 개방하기로 한 것은 기쁘지만, 중국이 '자유 시장'을 갖춘 나라라고 말하지 말라"며 "국가안보에 관해서 우리는 아무리 주의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밝혀 일대일로 MOU 체결에 대한 불편함을 숨기지 않았다.

시 주석과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만남은 불발된 것으로 보인다. 교황청은 중국이 공산화된 이후인 1951년 중국과 외교 관계를 단절했다. 중국 내 가톨릭 주교의 임명권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어 온 양측은 약 10년의 협상 끝에 작년 9월 잠정 합의에 도달했지만 중국 정부내 반발이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시 주석은 22일에는 세르지오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과 만나 내년에 수교 50주년을 맞는 양국의 전략적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일대일로를 매개로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서의 교류를 확대하기로 뜻을 모았다.

양국 정상은 이 자리에서 이탈리아의 일대일로 참여에 대한 미국과 EU 등 서방의 우려를 의식한 듯 "투자와 교역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쌍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또한 '일대일로'는 교역뿐 아니라 인권에 관한 대화도 확대하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중국의 인권에 대해서도 간접적으로 거론했다.

23일 시칠리아로 간 시 주석은 24일 두 번째 순방국가인 모나코를 거쳐 프랑스로 향한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24일 밤 만찬을 한뒤 25일 엘리제궁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26일에는 마크롱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도 만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