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서울 송파구청 4층 대강당에서 열린 강남·서초·송파·강동구 주최 채용박람회. 이순영(여·56)씨는 외식 업체 두 곳에서 '주방 보조' 면접을 봤다. 이씨는 결혼 후 줄곧 주부로 집안 살림을 했다. 이씨의 큰아들(31)은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구직 중이다. 이씨가 자취방 월세와 학원비 등으로 매달 100만원가량을 지원해 준다. 딸(29)은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다 최근 일을 그만뒀다. 카페 업주가 "인건비가 올라서 그러니 하루 4~5시간만 일하라"고 업무 단축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애들이 일자리를 못 구하니 나라도 취직하는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했다. 이씨는 이날 "면접 결과를 추후 알려주겠다"는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갔다.

19일 오후 서울 송파구 신천동 송파구청 대강당에서 열린 채용박람회 '일구데이'를 찾은 시민이 쪼그려 앉아 구인 정보를 들여다보고 있다.

'일구데이'(일자리 구하는 날)라는 이름의 이 채용박람회는 2016년부터 열렸다. 채용 의지가 있는 구청 관내 기업과 구직자를 연결해 현장 면접을 주선하고 있다. 참가자가 100여 명이 안 될 때도 많지만 이날은 500명 넘게 왔다. 구직자 중 90%가 이씨 같은 50~60대였다.

환경 미화, 외식 분야 13개 기업은 이날 128명을 뽑겠다며 면접 부스를 차렸다. 2시간 동안 진행되는 면접을 보러 1시간 전부터 구청 앞에서 기다린 구직자도 있었다. 강당 한가운데 놓인 15m 길이 테이블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지원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썼다.

아파트 미화원 20명을 뽑는 한 용역 업체 면접 대기석에는 2시간 내내 사람이 북적였다. 서울 잠실의 한 주상복합아파트에서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3시까지 주 6일 청소하고 월 130만원을 받는 자리다. 한 50대 지원자는 "근무시간도 괜찮고 4대 보험에 퇴직금도 나오니 꼭 합격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월급 208만원을 주는 대형 프랜차이즈 갈빗집 면접장에는 50대 주부들이 몰렸다. 면접관은 "주 6일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하고, 평일 하루 쉬어 고된 편"이라고 했다. 지원자들은 "상관없다"고 했다.

이날 채용박람회장에는 500명이 넘게 왔지만 실제 면접까지 본 사람은 280명이었다. 건설 회사 토목직으로 30년을 근무하고 정년퇴직한 유모(64)씨는 "자식들이 모두 출가했지만 마냥 놀 수가 없고 해서 일을 구하러 나왔는데, 내 경력에 맞는 일이 없었다"고 했다.

송파구에 따르면 이날 참가자 중 30명이 현장 채용됐다. 50여 명은 추가 면접을 보기로 했다. 200명은 면접에서 탈락한 셈이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온 신모(61)씨는 이날 외식 업체 3곳에서 면접을 봤지만 일자리를 얻지 못했다. 신씨는 "인생의 말년까지 일을 하고 싶은데 50대 지원자가 너무 많아서 나같이 한물간 노인은 상대가 안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동안 집안일 이외에는 일을 해본 적이 없는 주부들 가운데는 이력서나 증명사진을 안 챙겨온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한 50대 여성 구직자는 "일이 필요해서 왔는데, 평생 이력서를 써본 적이 없어서…"라고 했다. 송파구 일자리센터 홍수희 상담사는 "자격증이 있어도 발급처·발급 일자를 몰라 기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안타까웠다"고 했다. 이날 송파구청에서 제공하는 '이력서 컨설팅' 부스 앞에는 50~60대 구직자들이 이력서 첨삭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섰다. 한정란 한서대 보건학부 교수는 "본인 노후 준비는 못 한 채 장성한 자녀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중장년층을 위한 일자리 대책이 시급하다"며 "이들의 직업 역량 강화를 위한 지원과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