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윤종구 부장판사가 검찰의 방대한 수사 기록이 변론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적폐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수십만 쪽에 이르는 수사 기록을 만들어 재판에 넘기는 이른바 '트럭 기소'로 인해 당사자와 변호인이 변론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최근의 법조계 지적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그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형사 기록을 전자화하자"고 했다.

윤 부장판사는 지난 16일 서울고법 판사 192명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수사 기관은 개인 1명이 만들 수 없는 (방대한) 기록을 단기간 내에 만들 수 있고, 1인이 정해진 기간 내에 숙독하기 불가능한 기록을 만들 수 있다'며 '헌법상 변호인 조력권이 보장되려면 변호인이 수사 서류를 숙독해야 하는데 검사가 만든 증거 서류를 재판부가 읽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했다. 방대한 수사 기록이 방어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최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에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해 각각 20만쪽, 17만쪽에 달하는 수사 기록을 만들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 기록도 12만쪽에 달한다. 한 고위 법관은 "수사 기록이 10만쪽만 돼도 1심 구속 기한인 6개월간 매일 500쪽 넘게 봐야 겨우 한 번 읽을 수 있는 분량"이라며 "결국 재판이 검찰 논리에 따라 수박 겉 핥기 식으로 흐를 수 있다"고 했다. 윤 부장판사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종이 원본을 전자적 이미지로 전환하는 등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방대한 수사 기록을 전자화한 후 재판부를 포함한 모든 이해 관계자에게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자 소송화된 민사소송과 달리 형사소송은 현재까지도 종이 기록이 전부다. 재판 준비를 위해서는 변호인이 기록을 모두 복사해야 하는데 분량이 방대하면 이마저도 쉽지 않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경우 기록 복사에만 2주 이상의 시간이 걸렸고 1000만원 넘는 돈이 들었다고 한다. 기록을 전자화하면 그 비용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필요한 부분을 바로 찾아 효율적으로 재판 준비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