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경기 화성시의 한 쓰레기 산에서 기자가 파란색 헝겊을 들고 있다.

'쓰레기 산'은 웅장했다. 보통 유적지나 문화재에 쓰는 형용사지만, 쓰레기 산의 분위기를 가장 정확히 나타내주는 듯했다. 인근 4층 건물보다 더 높은 '산'도 있었다. 또 다른 곳은 경사가 급해 3분가량 힘들게 올라가야 제일 높은 곳에 '등반'할 수 있었다.

환경부가 집계한 1t 넘는 쓰레기 더미의 개수는 235개, 규모는 약 120만t에 이른다. 이 쓰레기 더미들은 높게 쌓여 마치 산과 같다. '쓰레기 산'이라 부르는 이유다. 정식으로 공개되지 않은 곳까지 포함하면 이 수치를 훨씬 웃돌 것으로 보인다. 웅장한 쓰레기 산들은 어떻게 쌓인 것일까. '아무튼, 주말'이 현장을 찾았다.

쓰레기 산맥

미국의 케이블 채널 CNN은 지난 3일(현지 시각) 경북 의성군의 쓰레기 산을 보도했다. 의성군 단밀면 생송리의 한 폐기물 처리장에 쌓여 있는 거대한 폐기물 더미였다. 이들은 쓰레기 산을 "17만t에 달하는 쓰레기 더미가 타면서 연기와 악취가 흘러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성군보다 더 거대한 쓰레기 산이 경기도 의정부에 있다. 규모는 약 26만2000t. 지난 11일 직접 찾아간 이곳은 산이 아니라 '산맥'이 더 적절한 표현 같았다. 약 3348평(1만1070㎡)의 부지에 솟아오른 산이 4~5곳, 가장 높게는 약 15m가 넘는다. 바로 옆 의정부 경전철이 다니는 교각의 높이와 비슷했다. 산별로 높이가 다르고 이어진 곳도 있어 '능선'과 '골짜기'까지 갖췄다. 알루미늄 합판, 스테인리스 막대기 등 건설 폐기물이 그 산의 뼈대다.

이 쓰레기 산의 역사는 약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폐기물 처리 업체는 지난 1999년부터 이 일대 사유지에 철제 파이프 등 건설 폐기물을 겹쳐 쌓았다. 경관을 해치고 악취가 난다는 민원이 끊이지 않자 시는 이곳을 공원부지로 지정하고 이전 명령을 내렸다. 몇 번의 법정 공방 끝에 업체는 영업 허가 취소 처분까지 받았지만 따르지 않았다. 시 관계자는 "현재 업체 대표를 고발한 상태"라고 했다.

인천시 부평구에 있는 쓰레기 산도 비슷한 상황이다. 1만6000여t이 쌓여 있는 이곳은 업체 대표가 명령 불이행으로 징역을 선고받아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책임자는 벌을 받았지만 쌓여 있는 쓰레기는 처분할 도리가 없다. 시는 환경부에 예산을 요청하는 등 처리 방법을 모색 중이다.

화성시의 또 다른 쓰레기 산 모습이다.

지난 13일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의 한 쓰레기 산. 3m 높이의 가림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위로 봉분이 솟아 있었다. 안에는 다양한 쓰레기가 있었다. 사무실용 의자, 매트리스부터 폐비닐, 원탁 테이블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높이 올라가려 하자 발이 푹푹 빠졌다. 아무렇게나 쌓여 공간이 많은 탓이었다.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오자 옷은 회색 먼지와 분진투성이로 변했다. 약 300평(1000㎡)짜리 쓰레기통에 들어갔다 나온 셈이었다. 이곳도 업체 대표의 소재는 오리무중이다.

모든 쓰레기 산은 비슷한 과정으로 '융기'한다. 일단 장소는 대부분 재활용 업체 또는 폐기물 중간 처리 업체 부지다. 먼저 일반 사업장, 건설 현장 등에서 쓰레기를 받아온다. 이를 재활용하거나 매립지·소각장 등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시설 부족, 비용 문제 등으로 폐기물이 적체된다. 들어오는 쓰레기는 늘어나고 처리는 늦어진다. 업체가 쌓아둘 수 있는 쓰레기는 부지 면적에 따라 한도가 있다. 한도를 초과하면 지자체가 업체 대표에게 양을 줄이라고 명령하는데, 이때 '나 몰라라'식으로 대표가 도주하거나 지자체와의 법정 공방 끝에 실형을 살게 되는 것이다.

쓰레기 산은 악취가 나고 화재가 나기도 한다. 건설 폐적토뿐 아니라 옷가지, 스티로폼, 플라스틱 등 가연성 소재투성이다. 여름철 높은 기온에 부패해 마을 전체에 쓰레기 썩는 냄새가 진동한다. 경로당에 있던 마을 주민들에게 악취에 대해 묻자 "여름철만 되면 말도 못 한다" "일단 가서 보면 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가연성 쓰레기가 부패하며 자연 발화로 화재가 발생하고, 유독가스가 퍼지기도 한다. 쓰레기 산에서 검은 연기가 난다는 신고는 한 달에 수번 각 지역 소방서에 접수된다고 한다.

쓰레기 산을 이루는 폐기물은 크게 방치 폐기물과 불법 투기물로 나뉜다. 방치 폐기물은 처리 업체 책임자가 앞서 언급한 이유로 사라져 방치된 폐기물이다. 불법 투기물은 폐기물 처리 장소도 아닌 임야에 무단으로 쌓아놓는 것을 말한다.

환경부에 따르면 '쓰레기 산'의 개수는 전국 235개, 120만t이다. 이 중 절반인 68만2000t이 경기도에 있다. 다음으로 많은 곳은 경상북도다. 28만6000t이 CNN에 나온 의성군을 포함해 30곳에 퍼져 있다. 그 뒤로는 전북(7만8000t), 전남(3만2000t), 인천(2만9000t) 순이다.

늘어나는 쓰레기, 처리는 막막

쓰레기는 재활용이 원칙이고 재활용이 어려운 혼합 쓰레기는 매립, 소각, 수출된다. 하지만 이 세 방법이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쓰레기를 태우면 나오는 다이옥신이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2011년 611곳이었던 국내 쓰레기 소각 시설은 지난해 395곳으로 줄었다. 소각하는 대신 폐기물을 최대한 재활용할 수 있는 중간 처리 업체가 대두됐다. 그러나 재활용은 분리수거가 제대로 안 된 혼합 폐기물이 많아 여의치 않았고, 대부분 매립지나 중국으로 향했다. 그중 일부가 지금의 쓰레기 산이 됐다. 인천 서구의 수도권 쓰레기 매립지는 쓰레기 증가 추세가 예상보다 커서 예상보다 2년 빠른 2023년쯤에 용량이 다 찰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017년 말에는 중국이 환경오염 등을 이유로 각국으로부터 들여오던 쓰레기 수입 중단 조치를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불법 브로커들도 등장한다. 쓰레기 처리 비용이 날이 갈수록 뛰니 브로커들이 일반 사업장 대표에게 '만원에 처리할 것을 8000원에 해주겠다'고 접근하는 식이다. 이들은 인근 토지를 임대하고 거기에 몰래 버리고 도망가기도 한다. 경기 남부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지난해 검거한 조직 폭력배 일당이 이런 식으로 부당이득을 취했다. 중국이 막히니 동남아에 쓰레기를 불법 수출하기도 한다. 지난달 3일 한국에서 불법 수출한 사실이 적발돼 필리핀에서 평택항으로 다시 돌아온 '한국산 쓰레기'도 이 중 하나였다.

환경부는 2022년까지 모든 쓰레기 산을 처리하겠다고 지난 2월 공표했다. 그러나 지자체 관계자들은 회의적이다. 환경부의 지시는 '우선 폐기물을 처리하고 책임자에게 비용을 회수하라. 회수가 불가능 하면 일부 예산을 지원해주겠다'는 의미인데,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책임자가 사실상 비용을 낼 수 없는 상황인데, 수십억원대로 추정되는 처리 비용을 마련하긴 힘들다"고 설명했다.

"한국 플라스틱 문제는 문자 그대로 엉망진창이다(South Korea's plastic problem is a literal trash fire)."

CNN이 경북 의성군의 쓰레기 산을 보도하며 붙인 리포트의 제목이었다. 그들이 지적한 원인은 플라스틱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한다는 것. 쓰레기 문제는 대부분 플라스틱 사용의 폭증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한국의 1인의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은 98.2㎏으로 미국(97.7㎏)을 제치고 세계 1위였다.

결국 전국 도처에 있는 쓰레기 산도 무분별한 일회용품 사용의 산물이라는 의미다. 본지가 지난해부터 연재한 '환경은 생명입니다' 기획 시리즈도 같은 맥락이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일반 소비자가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습관과 제도적 뒷받침이 동반돼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