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3년이 지나면 당정(黨政) 관계에 레임덕이 온다. 미국의 경우에도 '임기 6년차의 저주'란 연구 논문이 나와 있다." 2007년 4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연임제 개헌 발의를 위해 준비했던 국회 연설문의 일부다. 그는 "우리의 경우 미국과 비교하면 임기 3년차의 저주라고 해야 할 형편"이라고도 했다. 임기 반환점을 도는 3년차에 내리막길을 걷는 징크스를 '저주'라고 할 정도로 풀기 어려운 과제로 여겼다. '3년차 징크스'는 여당 출신인 문희상 국회의장도 지난 1월 한 토론회에서 언급했다. 그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집권 3년차에 인기가 오르는 건 아주 드물다. 지지율은 떨어지는 게 정상"이라며 "대통령은 쫄 것 없다"고 했다.

◇역대 정부의 '3년차 징크스'

문 의장의 지적처럼 역대 정부는 3년차 징크스를 피해가지 못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역대 정부의 3년차 평균 지지율은 이명박(46%), 김대중(43%), 박근혜(38%), 김영삼(32%), 노무현(30%) 등 30~40%대에 그쳤다. 여권(與圈) 내부 갈등, 인사·정책 실패 등의 악순환이 반복됐고 권력형 스캔들과 대형 사고가 정국을 흔든 것의 영향이 컸다. 김영삼 정부의 삼풍백화점 붕괴와 대구 지하철 공사장 폭발 사고, 김대중 정부의 '정현준·진승현' 게이트와 의약분업 사태,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값 폭등과 행담도 개발 의혹 등이 불거진 것도 3년차 때다. 이명박 정부에선 세종시 수정안 논란, 박근혜 정부는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 파동 등이 대표적 사례다.

집권 3년차 이후 선거에서 여당이 대부분 패한 것도 징크스였다. 1987년 대통령 5년 단임제 개헌 이후 여당은 3~5년차에 실시된 네 번의 지방선거에서 모두 패했다. 다섯 번의 총선에선 여소야대(與小野大)가 네 번이었고 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2012년 총선이 유일했다. 노무현 정부는 3년차인 2005년에 열린 27곳 재·보선 전패(全敗)가 레임덕의 도화선이 됐다. 조일상 메트릭스 대표는 "집권 초에는 '잘해달라'는 격려의 의미로 대통령에게 지지를 보내는 국민이 많지만 임기 중반이 넘어서면 평가가 냉정해지면서 선거 결과에 그대로 반영된다"고 했다.

◇미국은 '6년차의 저주'

2014년 11월 미국 상·하원 중간선거에서 오바마 정부의 민주당이 패한 것에 대해 미국 언론들은 "집권 6년차 권태기(six-year itch)의 저주가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6년차의 저주'는 미국에서 대통령이 첫 취임 후 6년차 즉 재선 이후 집권 2기의 2년차에 실시되는 중간선거에서 패하면서 국정 장악력에 적신호가 켜지는 현상이다. 미국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집권 6년차 중간선거는 모두 일곱 번 치러졌으며 이 중에서 집권당이 여섯 번이나 졌다. 유일하게 빌 클린턴 대통령 때 여당인 민주당이 1998년 당시 탄핵 정국에서 역풍을 맞았던 공화당에 승리했다. '6년차의 저주'가 나타나는 주요 원인은 대통령 임기가 반환점을 지나면서 확산되는 국민의 피로감과 정부의 실적 빈곤에 대한 불만이 꼽힌다. 집권 6년차는 대통령 지지율도 하락 국면에 접어드는 시기다. 6년차 평균 지지율은 오바마(42%), 조지 W 부시(38%), 닉슨(26%), 트루먼(26%) 등 대부분 50%에 미치지 못했다.

◇文 정부 3년차를 좌우할 핵심 변수

집권 3년차를 맞는 올해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에는 어떠한 변수들이 영향을 미칠까. 작년에는 지지율이 고용 침체와 분배 악화로 인해 전반적으로 하락세였지만 남북 및 미·북 정상회담이란 단기 이벤트가 '구원투수' 역할을 했다. 올해도 2차 미·북 정상회담이 지난 연말부터 40%대 중반에서 횡보 중인 지지율의 반등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회담 결렬에 따라 국정 운영의 핵심 동력이던 '대북' 호재(好材)가 사라지면서 문재인 정부도 3년차가 순탄하지 않을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다.

'북한 이슈'는 가라앉았지만 그동안 국정 지지율의 발목을 잡았던 '경제 이슈'는 더욱 부각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연초 코리아리서치 조사에서 정부가 올해 가장 중점을 두고 추진해야 할 분야로 '경제 정책'이 61.2%로 단연 1위였고 '적폐 청산'과 '남북 관계'는 각각 7.5%와 6.7%에 불과했다. 갤럽인터내셔널이 지난 연말 실시한 50개국 대상 '올해 살림살이 전망' 조사에서 우리 국민은 '좋아질 것'이란 응답이 11%에 그치면서 요르단과 함께 공동 49위로 최하위였다. IMF 외환위기 때인 1997년 말 조사(16%)보다 낮았다. 올해도 민생·경제 문제로 인해 정부의 국정 운영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조사 결과다. 집권 3년차 정국을 흔들 변수로는 '돌발 악재(惡材)'도 주목된다. 예기치 못한 사건·사고와 권력형 비리,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언행 등 악재가 언제든지 튀어나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집권 3년차는 경기 침체가 과거 정부나 야당 때문이란 '남 탓'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기"라며 "당장 경제가 호전되기 어렵기 때문에 국정 지지율에 하방 압력이 커질 것"이라고 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정부는 남북문제만 잘되면 지지율이 다시 오를 것이란 믿음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 성과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3년차 징크스를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현 정부 들어 나아진 게 없다"… 늘어났던 진보층, 중도·보수층으로 회귀

문재인 정부의 3년차 지지율과 관련해 국민의 이념 지형(地形) 즉 보수층과 진보층의 규모 변화를 주목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지난 2년간 문 대통령의 절대적 지지 기반인 진보층이 강세였던 흐름이 최근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자료에 따르면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에는 여론조사에서 자신의 정치 성향을 '보수'라고 대답하는 비율이 대체로 높았다. 최순실 사태가 불거지기 직전인 2016년 9월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보수층(37%)이 중도층(32%)과 진보층(31%)보다 많았다('무응답층' 제외). 하지만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국회 통과 직후인 2017년 1월에는 진보층(40%)이 보수층(31%)과 중도층(29%)을 압도했다. 이 추세는 작년 하반기까지 이어졌지만 연말부터 진보층과 보수층 차이가 다시 좁혀졌다. 3월 1주차 갤럽 조사에선 진보층(34%), 중도층(34%), 보수층(32%) 등의 규모가 거의 비슷했다.

전문가들은 "현 정부 들어서도 '나아진 게 없다'는 실망감이 커지면서 진보층이 중도층이나 보수층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경제정책과 관련해 치솟고 있는 불만의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가 작년 5월 갤럽 조사에선 긍정(47%)이 부정(27%)보다 높았지만 지난 2월엔 부정(61%)이 긍정(23%)을 크게 앞섰다.

이상일 입소스코리아 본부장은 "정부가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면서 진보 우위의 이념 지형 균열을 자초했다"며 "현재 추세가 이어진다면 내년 총선에서 여야 간 승부가 치열해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