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11일(현지 시각) 워싱턴에서 열린 카네기재단 주최 핵 정책 포럼에서 "점진적 (북한) 비핵화는 없다"며 "우리는 일괄타결을 원한다"고 말했다. 전날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제재 해제를 맞교환하는 '빅딜(big deal)'을 주장한 데 이어 비건 대표까지 나서 '일괄타결식 빅딜'이 트럼프 행정부의 공식 목표임을 재확인한 것이다. 북한 비핵화 협상의 미국 측 대표인 그가 하노이 2차 미·북 정상회담 결렬 후 공개 석상에서 북한에 관해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北 생화학무기 포함, 모든 WMD 제거"

비건 대표는 이날 "(북한의) 비핵화를 점진적으로 진행하지 않을 것이고, 정부는 이에 대해 완전히 일치하는 입장을 갖고 있다"며 "처음부터 미국의 입장은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라고 했다.

비핵화의 범위와 관련해선 "핵연료 사이클의 모든 영역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대량살상무기(WMD) 제거에 대해 완전하게 약속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핵무기 위협만 제거하고 생화학무기의 존재를 계속 인정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했다. 북한을 향해 '일괄타결식 빅딜' 수용을 강하게 압박한 것이다.

'대화파'로 분류되는 비건 대표는 앞서 지난 1월 스탠퍼드대 연설에선 "미국은 북한 측에 싱가포르에서 한 약속을 동시적·병행적으로 추구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당시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 주장을 수용하는 듯했지만 이번엔 180도 입장을 바꾼 것이다.

이날 비건 대표는 미국이 하노이 회담에서 영변 핵시설의 '부분적' 비핵화와 제재 해제를 맞바꾸지 않은 데 대해선 "(제재 해제가) 미신고되거나 남은 WMD 프로그램을 발전시키는 데 직접 보조금을 주는 꼴이 된다"고도 했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기조가 선(先) 비핵화, 후(後) 제재 완화 방식의 '리비아식 해법'으로 북한을 압박하던 1년 전으로 사실상 돌아간 것"이라고 했다. 다만 비건 대표는 이날 "외교는 여전히 살아 있다"며 "우리는 관여를 유지하고 있고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고 했다.

◇"트럼프, 평양 실무 협상 후 빅딜에 무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6~8일 비건 대표의 평양 방문 직후 '빅딜' 추진에 무게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미·북 협상에 정통한 서울의 외교 소식통은 "평양 실무 협상이 아무 성과 없이 끝난 뒤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가 '빅딜 아니면 노딜(no deal)'로 기울었다"고 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빅딜, 노딜에 스몰딜(small deal)을 포함한 3개 안을 갖고 하노이에 갔지만, '영변 플러스 알파(α)' 요구에 묵묵부답인 북측 태도에 노딜을 최종 결심했다"고 전했다.

미측은 최근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재개를 위한 우리 정부의 제재 면제·완화 추진 움직임에 매우 거북해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소식통은 "지난 7일 미 국무부 고위 관계자가 우리 정부 당국자를 만난 직후 브리핑에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제재 면제를 검토하느냐'는 기자 질문에 '노(No)'라고 한마디로 잘라 말한 것은 상징적인 장면"이라며 "아직 우리 정부는 미국의 대북 강경 기조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백악관은 이날 의회에 2020년 회계연도 예산안을 제출하면서 '국가 방어 전략' 비용으로 전년 대비 약 5% 인상된 7180억달러를 편성했다. 이와 관련해 "북한과 이란 같은 불량 정권(rogue regime)에 맞서고 대응하기 위한 노력이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미 공군은 핵무기 탑재 신형 전략폭격기를 개발하는 등 전략자산 현대화를 통해 '핵 억제력'도 강화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