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이모(33)씨는 대학을 마치고 취직한 지 8년이 됐지만 결혼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이씨는 "30대 초반에 결혼하려고 마음먹었는데, 막상 결혼하려고 보니 능력 있고 괜찮은 남자는 이미 결혼했고, 연하 중에서 찾는 것도 쉽지 않다"면서 "당장은 결혼 생각을 접었다"고 말했다. 결혼한 지 4년이 됐지만 회사원 김모(31)씨는 아이가 없다. 아이 키우는 데 들어갈 돈이 무서워 포기했다. 지난해 은행 대출을 끼고 서울 영등포구에 집을 장만한 그는 "월급에서 매달 갚아야 할 대출금이 만만찮고 퇴근하면 파김치가 되는 형편이라 아이 낳을 생각은 접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0.98명으로 사상 처음 1명 밑으로 떨어졌다. 2016년 이후 서울 등 대도시 출산율 급락이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에는 출산율이 1명도 안 되는 광역자치단체(시·도)가 한 곳도 없었는데, 2016년에 서울이 1명 미만으로 떨어졌다. 그 뒤 2017년 서울과 부산 2곳으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서울·부산·대구·광주·대전 등 5곳으로 급증했다.

서울 25개 구 모두 2년 연속 출산율 0명대

서울의 저출산은 심각한 상황으로 접어들었다. 2017년부터 25개 구(區)가 모두 합계 출산율 1명 미만으로 떨어진 상태다. 2015년만 해도 10곳에 그쳤는데, 2016년 19곳으로 늘어난 뒤 결국 모든 구가 저출산 쇼크에 빠졌다. 구별로는 종로구(0.65명)가 가장 낮고, 관악구(0.66명), 강남구(0.71명), 서초구(0.80명), 용산구(0.81명) 순이었다. 성동구(0.97명)가 가장 높았다. 서울은 지난해에도 전년에 이어 2년 연속으로 25개 구 모두 출산율 1명 미만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지난해 서울 출산율은 0.76명으로 2017년(0.84명)보다 더 떨어졌기 때문이다.

은성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기획조정관은 "서울에 거주하는 여성의 50.5%가 가임기(15~49세) 여성이긴 하지만, 결혼하지 않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 경우가 많아 출산율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30대 여성 10명 중 4명(39.6%)이 비혼(非婚)이고, 결혼 5년 된 여성 5명 가운데 1명(20.4%)이 아이를 낳지 않았다.

시·군·구 229곳 중 80곳 출산율 1명 미만

전국 229개 기초자치단체(시·군·구) 가운데 합계 출산율이 1명에 못 미치는 곳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2015년 18곳, 2016년 36곳에 이어 2017년에는 65곳에 달했다. 지난해 출산율이 2017년보다 더 떨어졌기 때문에 출산율이 1명 미만인 곳이 80곳 정도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전국 시·군·구 3곳 가운데 1곳꼴인 셈이다. 지난해 시·군·구별 공식적인 출산율 통계는 오는 8월 발표된다. 이삼식 한양대 교수는 "아기를 더 낳을 수 있도록 사회경제적 구조를 바꿔 가야 한다"며 "아동수당도 모든 사람에게 나눠 주는 복지 정책이 아니라, 둘째를 낳으면 추가 지급하는 방식 등의 대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합계 출산율

미혼자 포함한 가임기(15~49세)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으리라 예상되는 아이 수. 합계 출산율이 2.1이면 부부가 2명을 낳는 것이어서 인구가 그대로 유지된다. 0.1은 영아 사망률을 예상해 더한 수치다. 합계 출산율이 1 미만으로 떨어지면 미래 인구가 반 토막 나는 것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