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동맹국들에 미군 주둔의 대가로 전체 주둔 비용의 150%를 부담하도록 요구하겠다고 한 발언이 알려진 뒤 미국에서도 거센 후폭풍이 불고 있다.

퇴역 미 사령관들은 ‘백치같은 주장’이라며 비난을 쏟아냈고, 안보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을 ‘조폭의 갈취 행위(protection racket)’에 비유했다. 현지 언론은 "기존 국제 질서를 완전히 뒤엎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2019년 2월 12일 백악관에서 각료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한·미가 올해 한국이 부담할 주한미군 주둔비를 지난해 보다 8.2% 인상하기로 합의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각료회의에서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추가 인상을 요구했다.

유럽 주둔 미군 사령관을 역임했던 퇴역 3성 장군 벤 호지스는 8일(현지 시각) 미국의 군사 안보 전문매체 디펜스원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에 미군이 주둔하는 데 따른 접근권의 가치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를 무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해외 주둔 기지는 우리의 안보에 필수적이다. 버지니아주(州)와 노스캐롤라이나주, 캘리포니아주에서만 미국을 지킬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호지스는 이어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미군 기지 등을 예로 들며 "이들 기지는 독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필수적인 전진 배치 사령부"라고 했다. 호지스는 "람스타인 공군기지(독일 서부에 있는 미국 유럽 주둔군 공군기지)와 터키 인지를릭 공군기지, 지중해에 있는 해군기지들이 없으면 우리는 어디에 있겠으며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 내 분쟁 지역에 병력을 빨리 투입시킬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어떻게 되겠는가"라고 강조했다.

호지스는 그러면서 "미국은 미국의 힘만으로 스스로의 안보와 주요 장소·자산을 지킬 수 없다"고 했다. 또 "우리에게는 동맹이 필요하고 우리가 믿을 만한 동맹은 유럽과 캐나다, 호주, 일본, 한국인데 왜 그들을 계속 맹비난하는가"라고 반문했다. 호지스와 같은 직책을 역임했던 퇴역 3성 장군 마크 허틀링도 트위터에 "(해외 미군 주둔비 150% 요구는) 정말 완벽한 백치 소리"라며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만이 이를 지지할 것"이라고 썼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2019년 3월 8일 오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주한미군 주둔비용 가운데 한국이 부담해야 하는 몫을 정한 한미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SMA)에 공식 서명하고 있다.

댄 샤피로 전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는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에 있는 미군 기지를 조폭이 갈취 대상으로 삼는 관할 지구로 취급하라는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하고 있다"며 "유럽 국가들이 이를 거절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의 거절을 그가 그토록 바라던 미국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탈퇴 명목으로 삼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든 트로우브릿지 전 국방부 대변인은 "이보다 자멸적이고 미국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 행위는 상상할 수 없다"며 "우리가 해외에 미군을 주둔하고 있는 이유는 하나다. 그렇게 해야 미국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국가안보 부보좌관이었던 줄리 스미스는 "(동맹국들에 미군 주둔비 150%를 요구하는 것은) 미국을 덜 안전하게 할 뿐 아니라 미국에 대한 신뢰를 더 잃게 하고 미국이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줄이는 역효과를 낳을 것이다. 끔찍한 아이디어"라고 했다. 스미스는 "미국은 가슴에서 우러나는 선의로 해외에 미군을 주둔하고 있는 게 아니다"라며 "미국에 이익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2019년 2월 13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 아파치를 비롯한 헬기들이 계류되어 있다.

블룸버그는 앞서 이날 10여명의 미 행정부 관리 등을 인용해 "백악관이 독일과 일본을 비롯해 결국에는 모든 주둔 국가에 전체 주둔 비용은 물론 주둔 비용의 50%를 프리미엄으로 부담하도록 요구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보도했다. 다만 백악관은 ‘해당 국가의 정책이 미국과 밀접히 일치할 경우 주둔비를 할인할 수 있다’는 규정도 만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디펜스원은 백악관의 이런 방침을 "일본과 한국, 나토 동맹국들과 협상하면서 미국이 내는 안보 비용을 핵심 교섭용 재료(bargain chip)로 활용하겠다고 한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 중 가장 극단적인 사례"라고 소개했다. 디펜스원은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뻔뻔하고 비외교적인 협상 스타일로 미·일 동맹과 미국·유럽 관계 등이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며 "군 통수권자에게 복종하려는 미군 지도자들의 의지도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디펜스원은 "국제 안보 비용 문제는 이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최고의 현안이 될 것"이라며 "이번 제안이 지난 세기의 국제 질서를 완전히 뒤엎는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다"고도 했다. 디펜스원은 "미국이 집단 안보를 인질로 삼아 ‘프리미엄’ 상납금을 내라고 요구하는 것은 나토의 결의를 넘어서는 것"이라며 "미국 정부가 이번에 거론한 ‘주둔 비용·50’ 방식은 조폭의 갈취 행위나 금품 강요에 비견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