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의 일본 후쿠시마(福島) 인근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와 관련, 세계무역기구(WTO)가 다음 달 11일 이 조치를 'WTO 협정 위반'으로 최종 판단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10일 알려졌다. WTO 분쟁 심판은 2심제로, 우리 정부가 작년 2월 패널 판정(1심)에 이어 이번 상소기구 판정(최종심)에서도 패소하면 연내 후쿠시마 인근 수산물의 국내 수입이 8년 만에 재개될 수 있다.

서울의 외교 소식통은 "WTO가 작년 4월 한국 측이 제기한 상소의 최종 판정일을 4월 11일로 정하고 최근 한·일 정부에 통보했다"며 "한국 측 패소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패소 시 약 3~15개월의 이행(유예) 기간을 거쳐 기존 수입 제한 조치는 해제해야 한다.

외교가에선 "일제 강제징용, 화해·치유재단 문제, 초계기·레이더 갈등으로 악화 일로인 한·일 관계에 또 악재(惡材)가 덮쳤다"는 우려가 나온다. 강제징용 배상과 관련해서도 이날 일본 언론은 '피해자 측이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압류 자산 매각 시 일본 정부는 관세 인상 등 대항 조치로 맞대응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우리 정부는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인근 지역 수산물 수입을 규제했다. 이어 2013년 9월 후쿠시마 인근 8개 현(縣)의 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특별 조치를 시행했다. 일본은 2015년 5월 "이 중 수산물 28종(種)의 수입 금지 등은 WTO 협정 위반"이라며 제소했고, 작년 2월 1심에서 WTO는 일본의 손을 들어줬다. '한국의 포괄적 금수 조치가 필요 이상으로 무역 제한적'이라는 이유였다.

국제 외교·통상 전문가들은 2심에서도 한국의 승소 가능성을 낮게 본다. 일본산 수산물의 위험성에 관해 WTO가 요구하는 수준의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 소식통도 "정부 조치가 국제 기준에 비해 강력한 건 사실"이라고 했다.

최종 패소하면 현재의 수입 제한 조치는 철폐해야 한다. 다만 후쿠시마 인근 수산물이 곧바로 전면 수입되는 것은 아니다. WTO 최종 판정 후엔 보고서 채택을 거쳐 평균 약 8개월의 이행 기간이 주어진다. 이 기간 우리 정부는 수입 제한 조치를 자체 완화하거나, 일본과 협의를 통해 향후 수입 범위·시기를 조정할 수 있다.

문제는 최근 한·일 관계가 최악인 데다 우리 정부의 대일(對日) 외교가 거의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란 점이다. 일본은 협의에 소극적으로 나오면서 '한국 정부의 자체 조치가 미흡하다'며 다시 WTO에 제소할 수 있다. 여기서 승소하면 관세 부과 등 보복 조치가 가능해진다. 우리 정부의 '대응 카드'는 마땅치 않다.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 정부가 패소하면 이행 기간을 최대한 확보한 뒤 일본과 잘 협의하는 게 최선인데 외교적으로 녹록지 않은 상황"이라며 "일본이 승소 이후 국제 여론전에 나설 경우 WTO 협정 준수 모범국인 우리나라가 신인도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고 했다. 외교 소식통은 "WTO 판정이 한·일 관계 악화에 새 불씨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