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인공지능(AI) 인력 부족 문제를 풀 AI대학원이 출범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4일 ▲고려대 ▲성균관대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등 3곳을 AI대학원으로 선정, 이 대학들에 5년간 90억원을 지원해 인공지능 핵심 지식과 AI 지식을 갖추고 다른 분야와 융합해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역량(AI+X)을 갖춘 연구자를 양성할 계획이다. 9월 개강을 앞둔 AI대학원이 AI 연구를 끌어올릴 수 있을까. AI 대학을 선도하는 해외 대학의 특징과 국내 AI 연구 환경을 짚어봤다.

◇'3大3色' 고려대·성균관대·카이스트 AI대학원

세 대학은 모두 연구를 선도할 AI 핵심연구 인재와 AI를 다른 분야와 접목할 융합 인재 양성을 표방한다. 다만 두 목표에 대한 비중은 다소 다르다.

고려대는 4대 특화 분야를 선정한 게 특징이다. 헬스케어와 지능형 에이전트, 게임, 자율주행 분야와 AI를 접목해 새로운 경제 효과를 창출하는 게 목표다. 성균관대도 3대 분야를 정했다. 제조업, 헬스케어, 비즈니스다. 이공계가 아닌 인문·사회학계열 학생에게도 기회를 줄 계획이다. 이를 통해 인문·사회학 계열에도 AI 연구를 이식하겠다는 각오다.

카이스트는 핵심 인력 양성에 더 비중을 뒀다. 세계적 연구 동향에 발맞추고 선도할 수 있는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목표다.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내 IT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해 판교에 AI대학원 산학협력센터를 설치하고 AI 밸리를 육성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2023년부터 AI대학원을 AI단과대학으로 발전시킨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3곳은 가을학기 대학원 신입생 선발 일정에 맞춰 내달 신입생 원서접수를 진행할 계획이다. 고려대는 석사는 뽑지 않고 석·박사통합과정과 박사과정만 25명을 선발한다. 카이스트는 석사 20명, 박사 10명을 선발한다. 성균관대는 석사 20명, 박사 5명을 모집한다. 한 해 정원은 고려대 50명, 성균관대 60명(1차 연도 50명), 카이스트 60명이지만 가을학기임을 감안해 절반 수준만 뽑는다.

◇AI 연구 선두 미국… 연구소 중심 산학협력 활발

AI 연구를 선도하는 나라는 단연 미국이다. 2002년 머신러닝 학과를 개설한 카네기멜런대는 AI 연구의 손꼽히는 명가다. 이런 배경엔 오랜 전통을 갖고 기업과 소통하며 연구를 진행해온 연구소들이 자리하고 있다. 학과 중심인 우리와 달리 대학원생들이 연구소를 기반으로 기업과 직접 연결될 기회가 많다 보니 AI를 이론적으로 접하고 공부하기보다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자연스럽게 익힌다. 김민구 아주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는 "미국은 대학 연구소가 중심이 돼 기업과 적극적으로 협업하면서 규모가 큰 연구를 수행한다"며 "직접 문제를 해결하면서 교육적 효과도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카네기멜런대의 AI를 연구하는 연구소는 CMUAI(Carnegie Mellon University Artificial Intelligence Lab)다. CMUAI의 연구가 발전하면서 각종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카네기멜런대에 연구소를 만들어 다양한 주제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기업과 함께 관련 분야 AI를 연구하는 연구진만 200여 명. 기관·기업 파트너십만 220곳에 달하고, 이를 통해 지금까지 연구비 2억5000만달러를 유치했다. 최근엔 국제적인 식량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AI를 접목해 식물의 육종과 작물 관리 방법을 개선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10억달러, 우리 돈으로 1조1000억원을 투입해 올해 9월부터 AI단과대를 만들 계획에 착수한 매사추세츠공대(MIT)도 연구소의 힘이 강하다. 이 대학의 AI 연구를 선도하는 것은 CSAIL(MIT Computer Science & Artificial Intelligence Lab)다. 이 연구소에서 현재 AI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 인력만 900여 명. 이들이 지금도 441개의 프로젝트를 한꺼번에 추진하고 있다. 한 해 연구비는 6500만달러 수준. 일례로 현재 카타르컴퓨팅연구소와 협력해 아랍어 말하기와 언어 처리, 콘텐츠 적응을 위한 AI 연구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 밖에 UC버클리나 스탠퍼드대도 AI 연구소를 설립해 기업과 함께 AI 연구를 진행했다. 스탠퍼드대 AI 연구소는 기업과 특별한 제휴를 맺고 연구를 진행하기도 한다. 연간 20만달러를 받고 3년 계약을 진행하는 AI 제휴 프로그램이 그것. 기업이 필요한 AI 기술에 대해 자문위원회를 구성해서 조직적으로 대응하고, 학생을 기업체에 파견하는 리쿠르팅 기회도 제공한다. UC버클리도 교수진과 대학원생 등 120명이 모인 BAIR(Berkeley Artificial Intelligence Research Lab)을 통해 AI 연구를 진행한다.

미국의 독주에 자극을 받은 중국은 최근 국가적으로 AI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중국은 지난 2017년 차세대 AI 발전계획위원회를 설립해 3년간 1000억위안(약 16조원)을 투입할 계획을 밝혔다. 최근엔 'AI+X' 융합전공 100개를 개설하고, AI단과대학과 연구원을 50개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이와 달리 한국의 AI 기술력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2017년 정보통신기획평가원 분석)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1.8년이나 기술력이 뒤처졌다.

◇"반도체 등 전통 제조업에 밀려 AI 연구는 소홀"

특히 산업 구조가 전통적인 제조업에 쏠려 AI를 연구할 소프트웨어 분야 투자가 적었던 게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지형 성균관대 AI학과장은 "2000년대 들어 광통신 등 ICT(정보통신기술)가 강조되면서 기업과 대학이 모두 이쪽으로 쏠렸다"며 "이 때문에 AI 연구는 예산이 돌지 않아 거의 연구가 이뤄지지 못했다"고 말했다. 우수한 인력도 AI보다 반도체나 LED, 스마트폰 등 제조산업 연구에 더 몰두했다는 의미다.

미국과 달리 AI 연구를 추진할 연구소 등도 없었다. 최근 일부 대학에 AI 연구가 불붙은 것은 2016년 AI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이 대국을 벌였던 '알파고 쇼크' 이후다. 1985년 카이스트 전산과에 부임해 국내 AI 연구 1세대로 알려진 김진형 인공지능연구원장(카이스트 명예교수)은 "처음 국내에서 AI를 연구할 때는 연구 인력도 거의 없는 불모지에 가까웠다"고 말했다. 최근에도 크게 개선되진 않았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국내 AI 석박사급 인재는 2022년까지 7260명이 부족할 전망이다.

이런 어려움을 없애기 위해 문을 여는 AI대학원은 어떤 학생들이 지원할 수 있을까. 연구를 선도할 핵심 연구자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기초 지식이 없다면 어려움을 겪을 공산이 크다. 정송 카이스트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는 "첫 선발이다 보니 수월성에 중점을 두고 선발할 계획"이라며 "AI를 이해할 수 있는 수학 능력과 컴퓨터 언어를 다룰 수 있는 프로그래밍 능력을 갖춘 학생이 지원해주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성환 고려대 AI학과장은 "어렵더라도 AI의 영역을 적극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재들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