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보석 허가를 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머물고 있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 앞에 7일 오후 경찰들이 근무를 서고 있다.

이명박(78) 전 대통령이 보증금과 접견·통신 제한 등을 조건으로 보석 석방된 것을 두고 경찰 내부에서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법원에서 현실성 없는 조건을 내걸고 책임을 경찰에 다 떠넘겼다는 것이다. 법조계에서도 법원이 여론을 의식한 나머지 지나치게 엄격한 보석 조건을 내건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는 이 전 대통령의 보석을 허가하며 △보증금 10억원 △주거·외출 제한 △접견·통신 제한 △1주 1회 보석조건 준수에 관한 보고서 제출 등의 조건을 내걸었다. 재판부는 "불구속 재판 원칙에 따른 보석 제도가 국민의 눈에 불공정하게 운영된다는 비판이 있다"며 "자택 구금에 상당한 조건을 붙이기로 했다"고 했다.

법원은 그러면서 ‘구금 조건’을 이행하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경찰에 맡겼다.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의 논현동 자택을 관할하는 서울 강남경찰서장에게 1일 1회 이상 이 전 대통령이 주거 및 외출 제한 조건을 준수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그 결과를 법원에 통지하도록 했다.

이 전 대통령 자택 경비와 보석 점검 여부는 강남서가 맡는다. 강남서는 이 전 대통령 석방 이후 자택에 기존에 상시 배치돼 있는 24중대 외에 강남서 소속 방범순찰대 1개 소대를 추가 배치했다. 이 전 대통령 자택으로부터 직선거리로 260여m 떨어진 논현1파출소에서는 기존에 정해진 순찰 코스에 더해 이 전 대통령 자택 주변 도로 등을 2시간마다 한 번씩 점검하기로 했다.

경찰은 법원의 ‘보고 조치’ 통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내부에선 ‘권한이 없는데 점검을 어떻게 하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관계 법령에는 법원이 경찰에게 보석조건 준수 여부에 관한 조사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지만, 요구를 받은 경찰 측에서 이를 강제로 점검할 수 있는 권한은 따로 나와있지 않다. 이 때문에 경찰 사이에선 "보석 결정은 법원이 했는데 혹여나 잘못되면 경찰만 독박을 쓰게 됐다"는 말이 나온다.

이 전 대통령 자택을 관할하는 강남서 경정급 한 간부는 "이 전 대통령이 보석 조건을 어겼다고 의심되는 상황이 생기더라도 강제로 자택에 들어가거나 차량을 일일이 수색할 권한도 없는데, 이 전 대통령이 주거·외출 제한을 준수하는지를 경찰에게 감시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이 전 대통령이 집 밖으로 나갔는지 안 나갔는지 바깥에서 지켜보는 정도로 이뤄지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접견·통신도 골칫거리다. 이 전 대통령이 휴대폰이나 컴퓨터로 누구와 연락하는지 경찰이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법원을 통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으면 되지만 특별한 범죄 혐의 사안이 없는데도 보석만을 이유로 압수 영장을 신청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한 고법 부장판사는 "이 전 대통령이 보석 조건을 어겼다는 사실이 적발됐다거나 영장을 발부할 필요성을 입증해야 하는데 보석 조건 준수 확인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영장 발부는 안 될 것"이라고 했다.

법조계에서도 법원의 이런 보석 조건이 다른 피고인에 비해 이례적으로 엄격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법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일반적으로 주거 제한까지는 조건으로 내걸기도 하지만 외출과 접견, 통신까지 금지하는 것은 상당히 예외적"이라며 "보석이라는 게 구금 생활로부터 해방해준다는 데 의의가 있는데 구치소 생활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고 했다. 그는 "재판부가 보석에 비판적인 여론을 의식하고 여기저기 눈치 보다가 불가피한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